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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호두는 하여튼 문제다

강아지에 대한 끝없는 불평거리

by 정벼리

호두는 정말 골칫덩이다. 호두 때문에 내가 요즘 곤란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는 원래 강아지를 무서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달 전 우리 가족은 강아지 호두를 입양했다. 아이가 반려동물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쪼그만 믹스견 호두는 이제 5개월 갓 넘은 아기 강아지다. 아직 2kg도 채 나가지 않는 강아지 한 마리가 집에 온 이후, 안 그래도 정신없던 하루하루가 매일 폭탄이라도 맞은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온 집안이 강아지 물품으로 가득 찼다는 것이다. 원래도 맥시멀리스트에 가까운 우리 집이건만, 거기에 강아지 물건까지 더해졌다. 거실 가장 너른 바닥에는 강아지 매트가 깔렸다. 그 위엔 밥그릇, 급수기, 쿠션, 방석, 공, 삑삑이 장난감, 로프 장난감, 노즈워크 장난감, 호두 전용 봉제인형까지...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바구니에 굴러다니는 장난감을 주워 담지만, 그때 뿐이다. 호두 녀석은 똑똑하게도, 바구니 안에 든 장난감을 하나씩 꺼내 뿌려가며 논다. 장난감을 끄집어낼 때면 꼬리가 감정을 채 감추지 못한 채 신이 나서 좌우로 팔랑거린다. 내 거실에 강아지를 들인 것인지, 거대한 강아지 집에 내가 들어온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 집 호두


이 쪼끄만 털뭉치는 밥투정도 한다. 처음에는 저렴한 사료를 샀는데, 강아지를 오래 키워 온 직장 동료가 조언하길 좋은 사료와 영양제를 챙기란다. 그래야 안 아프고 건강하다고. 어휴, 내가 강아지 병수발까지 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쩔 도리가 없지. 유기농에, 휴먼 그레이드에, 영양성분까지 딱 알맞은 비싼 사료를 큰맘 먹고 주문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먹지를 않는다. 팔자에 없는 반려견 카페까지 가입해서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강아지는 사료맛을 냄새로 느낀다며 냄새 강한 사료랑 섞어 먹여 보란다. 이제 잘 먹나 지켜봤더니, 내 원 참! 냄새 강한 사료만 꼴깍 삼키고, 비싼 유기농 사료는 수박씨 뱉듯 바닥에 퉤퉤 뱉어놨다.


이렇게 손이 많이 갈 거라면, 주인 말이라도 잘 들어야지. 산책이라도 나가면 고집이 고집이... 말로 다할 수가 없다. 잘 걷다가도 뭐가 조금만 제 맘에 안 차면 걷지 않겠다며 네 발로 딱 버티고, 나를 째려본다. 아니, 이놈아, 너 때문에 이 더운 날에도 매일 같이 산책을 나와주는데 고마운 줄은 모르고 이게 무슨 똥꼬집이냐, 푸념해도 소용없다. 한번 맘이 틀어진 호두는 아무도 못 말린다. 질질 끌고 올 수도 없으니 별 수 있나. 왕실견이라도 모시듯 곱게 안아 들고 데려온다.


한참을 사람 손에 안겨서 온 주제에 아파트 근처만 와도 집에 가는 줄은 귀신같이 알아챈다. 그때부터는 저를 내려놓으라고 몸부림을 친다. 바닥에 내려놓으면 바람에 귀를 나부끼며 집을 향해 돌진한다. 달리는 속도가 아주 강아지계의 우샤인 볼트다. 집은 얼마나 기똥차게 찾아가는지, 쪼그만 고집쟁이가 머리는 아주 비상한 것이 틀림없다.


이 녀석이 여간 지능이 높은 것이 아닌 게, 일부러 배변 실수도 한다. 놀아달라며 꼬리를 헬리콥터 프로펠러처럼 돌리며 다가올 때엔 한두 번 대충 터그 놀이라도 해줘야 한다. 바쁘다고 계속 무시하다가 몇 번 된통 당했다. 안 놀아준다고 약이라도 바짝 올랐는지, 엉뚱한 곳에 오줌을 누는 것이다. 평소에는 배변을 얼마나 잘 가리는데, 일부러 그러는 것이 틀림없다.


어제 저녁도 한바탕 전쟁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가니, 호두는 파다다닥 현관문 앞으로 뛰어와서 용수철 튀어 오르듯 뜀박질을 하며 나를 반겼다. 신난 호두는 온 집안을 팔짝팔짝 뛰어다니더니 급기야 배변판에 놓인 자기 응아를 밟아버리고 말았다. 나는 현관에 가방이며 택배상자며 전부 내버리고 달려가 호두를 안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적절한 미온수에 호두 발을 씻기며, 이 말썽꾸러기 녀석, 너 때문에 내가 못살아, 외쳤다. 호두는 그저 까만 눈을 내게 맞추고 해맑게 꼬리만 흔들 뿐이었다.


어휴, 속 터져. 호두는 하여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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