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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있어?

돌아서면 쑥 자라 버리는 너를 어쩌면 좋니.

by 정벼리

예전에 딸아이가 눈물을 쏙 빼놓을 정도로 웃겼던 일이 있다. 가끔 아이들은 속없이 순진하고 멋몰라 어른들을 웃겨주곤 한다.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생들도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있다는 말을 들었던 날이다. 우리 아이는 여태껏 남자친구는커녕 관심이 가는 남자아이에 대한 언급도 한 번 해본 적이 없는데. 혹시 아이가 나에게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넌지시 물었다.


"별이는 혹시 남자친구 없어?"
"응, 없어."
"그럼 별이는 학교에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있진 않아?"
"없는데? 남자애들은 시끄럽고 말썽만 부려."
"그렇구나. 나중에라도 별이가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있으면 엄마한테 꼭 알려줘."
"그래. 근데 왜?"
"왜긴! 엄마는 별이 일이라면 뭐든 궁금하니까. 얼마나 멋진 친구가 별이 마음에 들었는지 궁금하잖아."


아이는 저를 향한 내 관심이 썩 마음에 드는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응. 내가 꼭 알려줄게. 근데 엄마, 나도 궁금한데, 엄마도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있어?
"그럼! 엄마는 아빠를 좋아하지."
"아니! 나나 아빠 말고, 회사나 친구 중에 좋아하는 남자친구 있냐고."
"뭐? 푸하하하! 별아, 결혼하면 다른 좋아하는 남자나 여자가 있으면 안 되는 거야."


남편과 나는 어이없을 정도로 천진한 딸아이의 질문에 말 그대로 빵 터졌다. 다 큰 것 같다가도 가끔 이토록 멋모르는 이야기를 할 때면, 어휴 우리 딸 아직 아기구나, 싶어 그저 귀여웠다.




어제는 남편이 약속이 있다고 하여 둘이서만 저녁을 먹었다. 갑자기 아이가 폭탄선언을 했었다.


"엄마, 남자친구가 생기면 좋을까?"
"어머, 우리 별이, 남자친구 생겼어?"
"아니이, 남자친구가 생긴 것은 아니고. 내가 요즘 관심이 가는 애가 생기긴 했어."
"우와, 누구야? 우리 별이 눈에 찰 정도면 엄청 멋진 친구인가 보다!"


지금껏 남자아이들이라면 그저 말썽만 부리고 시끄럽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아이였는데, 관심이 가는 남자애가 생겼다니. 그 친구는 잘생겼고, 조용조용 이야기하고, 도서관도 자주 가고, 친절한 아이라면서 그게 누군지는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아이에게 질척거리며 매달렸다.


"별아, 엄마가 진짜 비밀 꼭 지킬게! 너무너무 궁금하다. 대체 누구야, 그렇게 멋진 애가?"
"아이, 부끄럽다고."
"네가 엄마한테 좋아하는 친구 알려주면, 엄마도 너한테 좋아하는 사람 가르쳐줄게. 우리 서로 비밀을 공유하자."


아이는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엄마는 내가 바보인줄 알아? 엄마가 아빠 말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 집에 큰 문제야. 분명 내 비밀만 듣고, 엄마는 나한테 아빠지롱, 아니면 별이지롱, 할거면서. 뻔한 거짓말로 누굴 속이려고 해!"


쳇. 불과 얼마 전까지 엄마도 회사에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어보던 녀석이 언제 또 이렇게 자라 버렸대. 너는 돌아서면 쑥 자라 있구나. 훌쩍 큰 네 모습이 반가우면서, 동시에 어제로 사라진 어린 네가 아쉽다. 엄마의 마음은 이렇게 이율배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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