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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왜 꼭 평일 밤중에 아프니

한밤중 아이가 배앓이를 겪었다.

by 정벼리

우리 아이는 어려서부터 한 번씩 배앓이를 할 때가 있었다. 아무래도 소화기관이 아주 튼튼하게 타고난 것은 아닌 모양이다. 남편은 타고나길 장기능이 약한 편이라 일 년에 몇 차례는 가벼운 장염 증상을 앓고는 한다. 남편을 닮았나 싶다가도, 기억을 가만가만 더듬어보면 나도 어릴 때에는 한 번씩 배가 아파서 할머니 손은 약손, 노래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어제 한밤중에 아이가 배앓이를 겪었다. 한참 혼몽한데 어디선가 아이의 목소리가 뭐라 뭐라 들려왔다. 아직 한 발은 꿈에 걸친 채 이게 무슨 소리지, 하는 생각을 하려는 찰나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별이 배 아파? 가자, 아빠가 봐줄게."


남편이 서둘러 침대를 떠나는 듯한 매트리스의 움직임이 느껴졌고, 방 안에 혼자 남아 뒤늦게 살짝 잠이 깬 나는 그때가 아침인 줄 알고 이리저리 기지개를 켜며 몸을 뒤틀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하다 시계를 보았다. 새벽 세 시. 허탈하게 웃으며 다시 침대로 털썩 쓰러졌다. 정주행 하던 드라마를 끊어내지 못해서 평소보다 늦게까지 넷플릭스에 빠져있다가 이러다 내일 아침에 큰일 나지, 헐레벌떡 잠자리에 든 지 이제 고작 두 시간 반이 지났다.


나는 경미한 수면장애가 있어서, 한 번 자다가 깨면 좀처럼 다시 잠들지 못한다. 남편도 내가 잠에서 깰까 봐 부리나케 일어나 안방 문가에 서있던 아이를 아이방으로 데리고 간 것 같은데, 그 노력이 허무하게도 잠에서 깨버렸다. 남들이 들으면 무슨 엄마가 아이가 아프다는데 일어나 들여다보지도 않냐고 비난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심각한 상황이면 남편이 깨우겠지 싶어 그냥 다시 잠을 청했다.


하지만 그때부턴 내가 다시 잠들지 못할 이유만 넘쳐났다. 조용히 잘 자라고 남편이 방문을 닫아둔 탓에 방 안 공기가 점점 올라가는 게 느껴져서, 에어컨 리모컨을 더듬더듬 찾아 설정온도를 1도 낮췄더니 LED 표시창에 환한 불빛이 생겨버려서,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가 커져서, 남편이 금방 방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이가 많이 아픈 건지 신경이 쓰여서... 갖가지 이유로 깊이 잠들지 못하고 밤새 선잠만 서성였다.


덕택에 날이 밝은 뒤로 머리도 멍하고 영 개운하지가 않았다. 연신 하품만 쏟아내는 나를 향해 남편이 물었다.


"왜 그렇게 피곤해해?"
"별이가 어젯밤에 아프다고 깨서..."
"당신 자고 있던 거 아니었어?"
"당신이 별이 데리고 나가자마자, 나 그때가 아침인 줄 알고 씻으려고 화장실까지 갔잖아."
"새벽 세 시쯤이었어."
"맞아. 시계보고 다시 누웠는데 계속 뒤척이느라 잘 못 잤어."


남편은 더 이상 다른 이야기를 하진 않았지만, 그의 머리 위로 떠오른 말풍선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당신이 뒤척이느라 못 잔 동안 애 수발은 내가 다 들었는데 당신이 못 자서 피곤하다니 세상 억울하다는 뭐 그런 말이 쓰여 있는 말풍선 말이다. 나는 얼른 설레발을 쳤다.

"당신 밤에 정말 힘들었지. 우리 별이는 어째 평일 밤에만 배가 아플까."
"그러게 말이야. 낮에는 괜찮았는데."
"멋진 아빠가 다 받아줄걸 알아서 그런가. 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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