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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기를 또 사고 싶다고?

이미 집에 있는 청소기만 4대라지만 각각 다 쓰임이 다른걸.

by 정벼리

친구 L과 휴대전화로 한참 수다를 떨던 중이었다. 결혼할 때 장만한 로봇 청소기가 수명이 다했는지 오늘내일하고 있어서, 새로운 로봇 청소기를 구매해야 하는데 요즘 나온 신제품들이 좋은 게 너무 많아 쉽게 고르질 못하고 있다고 했다. L은 결혼 후 몇 년이 지나서야 아이를 낳아, 아이가 한참 어리다. 나는 그맘 때 온 집안이 이 물건으로 어지러워서 로봇 청소기를 잘 활용하지 못했던 기억이 났다.


"애가 어리면 물건이 많아서 로봇 청소기 돌리기 어렵지 않아? 차라리 무선 청소기 좋은 걸 사지 그래."
"나는 대충만 치우고 그냥 로봇 청소기 막 돌려. 그렇게라도 안 하면 청소할 시간이 없어."


아이가 어려서 손이 많이 갈 무렵이면, 퇴근하고 청소하는 일이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말하지 않아도 잘 안다. L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근데 벼리야, 기술이 정말 좋더라. 요즘 나오는 청소기는 인공지능이 달려서 바닥에 물건이 있으면 그거 피해 가면서 알아서 착착 청소한대. 반려동물 똥도 피한대. 옛날처럼 거실에 물건 하나 없이 치워둘 필요가 없대."


헐, 소리가 절로 났다. 물론 실제로 사용할 때 정말 광고처럼 그렇게 똑똑할지 아직 의심의 그림자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지만, 대단한 기술발전이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우리 집에는 많이는 아니고 조금씩 구식인 청소기 4대가 있다. 흡입력이 훌륭해서 메인으로 쓰이는 무선 청소기, 강아지 똥을 알아서 피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제법 기특한 로봇 청소기, 작은 면적을 치울 때나 캠핑 갈 때 편리하게 사용하는 핸디 청소기, 그리고 효과는 꽤나 확실하지만 잘 꺼내지는 않는 스팀 청소기이다. 확실한 로봇 청소기 파인 L은 우리 집에 청소기가 네 대가 있다고 하니, 청소기 한 대당 담당 면적이 여덟 평이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다 쓰임이 다른걸. 뭐 하나 없애려 하면 아쉽지 않은 것이 없다.


사실 요즘 눈이 가는 청소기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습식 청소기다. 물을 뿌려 바닥을 닦아내는 청소기는 예전에 쓰다가 이사를 오면서 처분했다. 무선 청소기 배터리 수명이 다 되었는지 청소 유지시간이 너무 짧아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소가 끝나고 폐수통에 모인 뿌옇게 변한 물을 버리면서 느껴지던 그 짜릿함이 한 번씩 다시 생각난다. 한번 돌리고 나면 마룻바닥이 나 청소되었어요, 외치는 듯 반짝반짝 빛나고는 했는데.


나는 습식 청소기를 다시 사고 싶다고 하니, L이 버럭 외쳤다.


"집에 청소기가 네 대나 있는데 또 청소기를 산다고?"
"아니, 그게 다 용도가 다르다니까."
"그러지 말고 나랑 같이 로봇 청소기를 새로 사자. 요즘 로봇 청소기에는 습식 청소 기능까지 다 들어있어. 로봇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돼!"
"너는 아직 너네 집 로봇 청소기도 못 골랐다며, 뭘 나한테까지 영업을 하고 그래."
"내가 고르는 김에 같이 골라줄까? 카드만 줘봐."
"솔직히 말해봐. 못 골라서 못 사고 있는 게 아니라, 오랜만에 쇼핑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운 거지?"


정곡을 찔린 듯 L은 멋쩍게 웃었다. 너는 얼른 적당한 로봇 청소기를 골라 사고, 나는 새로운 청소기 욕심을 버리고 깨끗이 청소나 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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