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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와 자전거

남편과 함께할 때 가장 재밌는 두 가지

by 정벼리

긴 연애 끝에 결혼을 한 우리 부부는 이십 대와 삼십 대를 오롯이 함께 해서, 서로의 영향을 참 많이도 받았다. 자라온 환경이 다른만큼, 상대방에게 내가 아는 것을 가르쳐준 것들도 갖가지이다. 남편한테 배운 것들 중 꽤나 유용한 두 가지 기술이 있는데, 바로 자전거 타기와 화투패 짝 맞추기이다.


보통 유년시절 어깨너머로 습득을 마치는 저 두 가지를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배우지 못했다. 타고난 운동신경이 끝내주게 모자란 덕에 우리 엄마아빠는 일찌감치 나에게 두 발 자전거 가르치길 포기하셨다. (엄마아빠는 네발, 세발, 보조바퀴 달린 자전거 등을 발달시기에 맞춰 바꿔주며 충분한 노력을 다했다. 다만 내가 보조바퀴를 떼고 앞으로 나가는 방법을 끝내 터득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사행행위에 대해 아주 완고한 '절대금지' 원칙을 고수한 아빠 덕택에, 세상 흔하디 흔한 화투 세트가 우리 집 담장 안에는 존재할 수 없었다. 큰집에서 친척 어르신들 사이에 화투놀이가 벌어질 때에도 나와 내 동생은 아빠의 엄명에 따라 화투판 근처에 얼씬대지도 못했으니, 나에겐 자연스럽게 화투패를 접할 기회가 아예 없었다.


연애시절 어느 봄날, 남편은 여의도 공원에서 못 타겠다고 화를 내는 나를 어르고 달래 가며 몇 시간이고 자전거 뒤를 잡고 두 발로 뛰었다. 남편의 온몸이 땀으로 젖을 때 즈음 나는 혼자서 비틀비틀 자전거로 직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뒤로도 몇 년간이나 남편이 꾸준히 가르쳐준 덕택에 좌회전도 우회전도 가속도 감속도 하나하나 습득해 가며 자전거 타기를 배웠다.


지금 우리 집에는 가족 수대로 자전거가 있어서, 볕 좋은 날에는 집 근처 천변에서 세 가족이 할랑할랑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논다. 구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쌀집 자전거로 저속주행을 하는지라, 라이딩을 즐기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추월할 수 있도록 몇 번이고 갓길로 피해 길을 내주어야 하지만 이 정도로 충분히 즐겁다. 자전거 타는 방법을 영영 배우지 못했다면, 지금 이렇게 신나고 즐거운 시간을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없었을 테니 퍽이나 아쉬웠을 것이다.


화투패 짝 맞추는 방법을 배운 것도 자전거만큼이나 유용하다. 요즘 세상에 화투놀이판이 벌어질 일은 별로 없지만, 가끔 명절 같은 때에 남들이 치는 판을 구경이라도 할 수 있고 규칙을 몰라 대화에 끼지도 못하는 처지는 면하였으니 나름대로 사회생활에 보탬이 되고 있다. 자전거처럼 아직 어린 자녀와 함께 할 정도의 취미생활은 못 되더라도, 어쩌다 가끔 남편과 둘이 맞고를 칠 때가 있는데 그게 또 그렇게 재미난다.


며칠 전에 대청소를 하다가 서랍 깊숙한 곳에서 굴러다니는 화투패를 발견했다. 아이가 잠든 이후 둘이 마주 앉아 정말 오랜만에 승패를 겨루었다. 내가 청출어람의 재능을 발휘하는 것인지, 남편의 헌신지애가 이토록 깊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날따라 내가 연승을 거두고 있었다. 꾸준히 이기며 점수를 누적하니, 내 승점은 어느새 백오십 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네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네 돈이라 설령 판돈이 있다 쳐도 이기든 지든 이익도 손해도 없다. 돈이 오갈 것도 아니면서, 남편을 놀리느라 어깨춤을 추며 외쳤다.


"여보, 이게 대체 얼마야? 아이고, 신난다!"


허나 화무십일홍이라고, 결국 나의 완패의 순간이 찾아오고 말았다. 내가 낸 패는 족족 남편이 가져가고, 뒤집어도 짝이 맞는 패가 없었다. 박이란 박은 죄 쓰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그는 화통하게 쓰리 고를 외쳤다. 남편 앞에 놓인 패는 청단, 홍단, 고도리 별별 짝이 다 맞춰진 채 형형색색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 누적 점수가 이 판 하나에 다 날아가게 생겼다. 손톱을 잘근잘근 씹다가 나는 결국 만행을 저질러버렸다. 에잇, 판을 엎어버렸다.


"안 해! 이게 뭐야! 혼자 다 해 먹고!"
"와, 이 사람 보게나. 지금껏 혼자 다 이기고 내가 한 번 이기려고 하니 그걸 엎어?"
"늦었어! 열 두시야. 잠이나 자자."


치사하네, 네가 오빠니까 좀 봐줘야지, 게임에 그런 게 어딨냐 우리는 티격태격하며 키득키득 웃었다. 화투도 자전거도 배우길 참 잘했다. 남편과 같이 노니 이렇게 재밌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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