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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원에 등록한 지 딱 일 년째

드디어, 이제야, 마침내 시르사아사나에 성공하다.

by 정벼리

일전에 「내 꿈은 골골 백세」에서 유병이라도 장수의 꿈을 향해 매일 운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적었던 적이 있다. 그 에피소드를 쓸 때 나의 의도와 달리, 읽는 이에게는 내가 꽤나 운동에 열성인 사람처럼 비치는 듯하여 적잖이 당황했었다. 진실은, 나는 몸치이고 운동은 정말이지 젬병이다. 운동을 잘 못하기도 하거니와 전혀 좋아하지도 않는다. 정말 죽지 않기 위해 움직일 뿐이다.


내 꿈은 골골 백세 / 튼튼하고 씩씩한 엄마로 오래오래 아이 곁을 지켜주고 싶다.




작년 이맘때 집 근처 요가원에 처음 등록을 했다. 요가원에 나가게 된 계기는 황당할 정도로 그냥 어쩌다가였다. 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저녁에 산책로를 걷곤 했는데, 비가 온 뒤 여름의 열기가 후끈후끈했다. 습기를 가득 머금어 묵직해진 공기에, 이제 당분간 산책은 글렀구나 싶었다. 그때 전봇대에 붙은 광고지가 눈에 들어왔다. 새로 생긴 요가원 광고지였다. 어차피 산책도 못 가고 소파에 자리보전할 바에는 요가원이나 나가볼까 하고 충동적으로 방문해 보았다. 가본 김에 한 달만 등록했다. 수련실에 에어컨도 있고 선풍기도 양쪽으로 두 대나 있어서 덥지는 않겠구나, 하면서.


그런데 세상엔 요가를 잘하는 사람들이 참 많더라. 새로 생긴 요가원이라 내가 등록한 이후로 신입 회원들이 꾸준히 늘어났는데, 나만 유난히 몸을 못 썼다. 주로 아쉬탕가, 빈야사, 하타 수업에 참석했는데, 수업이 마무리되어갈 때쯤 시르사아사나라고 불리는 머리서기 자세를 한다. 아무리 노력해 보아도 발이 땅에서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옆구리 힘을 쓰라는데, 옆구리에 힘을 쓰는 기제 자체를 이해하질 못하겠더라.



한 달이 끝나갈 때쯤, 여전히 시르사아사나에 접근도 못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수련실 뒤편 구석 벽에 붙어 휑뎅그레 앉아있는 나를 향해 선생님이 외쳤다.


“벼리님, 포기하지 마세요!”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는 아무래도 요가에 재능이 없나 봐요. 원체 운동을 못해서...”


선생님은 정색하며 말했다.


“아니에요. 누구나 노력하면 다 할 수 있어요. 삼 개월만 지나면 정말 다 해요.”
“정말이요?”


나는 그 말을 믿고 육 개월을 추가로 등록했다. (육 개월을 한꺼번에 등록하는 것이 한 달씩 등록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했다.) 그리고 삼 개월이 지났을 무렵, 내 발은 여전히 땅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선생님에게 웃으며 따졌다.


“삼 개월 지나면 누구나 할 수 있다면서요?”


선생님도 웃으며 말했다.


“쪼금만 더 하면 될 거예요. 힘이 많이 좋아지고 있어요. 몇 달만 더 하면 진짜 된다니까요.”


몇 달 뒤, 육 개월을 또 추가로 등록하면서 나는 다시 물었다.


“영영 머리서기를 못 하는 사람이 저 말고 또 있긴 하겠죠?”
“아니에요. 누구나 정말 언젠가 꼭 할 수 있는 날이 와요.”
“푸흐흐. 선생님, 근데 저 처음 왔을 때 삼 개월만 하면 될 거라고 하셨잖아요.”
“하하하. 제가 그랬나요? 근데 벼리님, 진짜 될 거예요. 그냥 즐기세요. 언젠가 반드시 됩니다.“


그 뒤로도 요가원에서 나의 포지션은 만년 열등생(?)이었지만, 그도 나쁘지 않았다. 선생님을 제외하면 아무도 내가 잘하는지 못 하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더군다나 선생님은 내가 나무서기 자세 균형 잡기만 잘해도, 너무 훌륭하다며 칭찬세례를 해주었다. 달콤했다. 열등생의 나태한 생활에 젖어버린 나는 언젠가부터 동작 완성에 별로 욕심도 내지 않았다.




지난주는 요가원에 나가기 시작한 지 일 년이 되던 주였다. 그날도 다른 날처럼 별다른 기대 없이, 남들 하는 동안 멀뚱멀뚱 앉아있을 수는 없으니, 관성처럼 벽 앞으로 매트를 옮겨 깍지를 끼고 머리를 바닥에 댄 채 엉덩이를 들어 발을 앞으로 조금씩 옮겨보았다. 요렇게 요렇게 슬금슬금 가다 보면 발이 떠오른다는데 그게 말이 되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하는 중에 거짓말처럼 발이 떠올랐다.


선생님은 귀신같이 상황을 눈치채고,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와 살짝 자세를 거들어주었다. 나는 일 년 만에 드디어, 이제야, 마침내 시르사아사나 첫 발 떼기에 성공해버리고 말았다. 그 뒤로는 내가 언제 땅에서 발을 못 떼었냐는 듯, 발이 하늘로 쑥쑥 잘만 올라갔다. 물론 올라간 뒤로 휘청휘청 엉망이긴 하지만 말이다.


걸음마 뗀 아이처럼 어깨가 으쓱으쓱 올라간 나를 향해 선생님이 말했다.


“거 봐요. 언젠가는 누구나 된다니까요. 어휴, 내 속이 다 후련하네. 이제 벽 없이 그냥 연습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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