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th of least resistance

벗어나 보아야 돌아갈 길도 보이나 보다

by Stella
스크린샷 2025-10-02 오후 6.33.44.png

직역하자면 '저항이 가장 적은 길', 약간의 의역을 보태자면 '가장 쉬운 길' 정도가 되겠다.


나는 path of least resistance의 성공사례다.


머리가 좋은 편이라 성적이 잘 나오니 공부를 했고, 부모님과 이민을 간 후에는 남의 나라 말로 그 나라 원어민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인문계 대신 이과계열 전공을 선택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어서는 큰 진로고민 없이 의대에 지원했고, 덜컥 합격해서 덜컥 입학했다.


흘러가는 대로 살아온 덕에, 나는 지금껏 어디 손 벌리는 일 없이 밥벌이를 하며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항상 억척스럽게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욕망이 기저에 깔려 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18개월간, 나는 제법 풍족했던 고정수입과 그에 딸려오는 여러 가지 혜택들 - 고상한 취미생활이라든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을 때에 먹을 수 있는 여유 같은 것들 - 을 잃었지만 그것을 상쇄할만한 무형의 자산들을 얻었는데, 그 대부분이 이 'path of least resistance'를 벗어나 본 경험 자체에 기인하고 있다.


이 경험이 개인적으로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사실 그것이 내 인생의 큰 흐름에 딱히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해 내가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자각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18개월의 외유를 마무리하고 현재는 다시 본업으로 돌아와 예전보다 훨씬 즐겁게 일하고 있다.


하지만 전보다 여유로워졌고, 매사에 조금 더 진취적으로 임하게 되었고, 나의 심리적, 물리적 한계를 더 잘 인지하고 수용하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나'를 더 객관적이고 섬세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정표가 없는 허허벌판에서 나만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는 것은 결국, 자신과 꾸밈없이 마주하여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어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신과 협상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적어도 지금은, 내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방식으로 서 있는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취미가 업이 된 후 깨달은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