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와 성장 사이, 이민자의 무게

by 스텔리나


종종 달콤한 단 잠에 취해 호기롭게 멋지게 사는 삶을 꿨다. 눈을 떠보니 마주하고 싶지 않은 피하고 싶은 삶, 그것이 이민자로서 다분히 녹록지 않게 느껴질 만한 삶이었다. 때로는 낯선 타지, 낯선 사람들 속에서 오는 그 삶이 나에게 주는 무게와 다가오는 크기가 잔혹할 정도로 넓고 깊었다. 헤엄쳐도 계속 그 자리에 머무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와 함께 한해 한 해가 지나 갈수록 노르웨이와 한국, 두 국가 사이에서 이도 저도 아니게 나조차도 내가 변한 건지 세상이 변한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을 느낄 때 특히 그러했다.


이민자들이 해당 국가에서 현지 친구 사귀기 어렵다는 것은 대체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노르웨이에서 그러했다. EU에 속해있는 대표적인 나라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과 달리 북유럽 국가의 문화는 또 달랐다. 그저 복지국가, 행복한 나라로만 알려져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밝고 행복하게 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떤 점에서 행복함을 느끼 기기에 행복한 나라로 손꼽힌걸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사람들은 차가웠고 무관심했고 넘어갈 수도 부서지지도 않는 바리케이드 앞에 멍하니 서있는 느낌이었다.


인성이 나쁘다, 날 서있는 것이 아닌, 달리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마음의 찜찜함과 의문을 남기게 하는 다른 점들이 많았고 머리, 마음 둘다로도 이해가 안 됐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는 데 다정함, 따스함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공유하기 어려웠다.


그러한 시기에 물리적 거리, 시차로 인해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들과 나의 이러한 상황을 제대로 공유하지 못하는 상황도 나에게 놓인 이민자의 삶이 더 외로웠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것인데 이렇다 저렇다 털어놓는다고 해도 전화를 끊고 나면 가족들에게 걱정만 안기고 나는 나대로 또 슬픔, 답답함을 느끼게 돼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다 만나게 된 현지인들에게 내가 겪은 경험을 토대로 말해봐도 역시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대체적으로 깊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공감을 표하지도 않았다. 그저 '아~음...'이라는 단순한 리액션을 들을 수 있었다. 이는 조그마한 비판적 얘기라도 불편해하는 그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만 더 알 수 없는 감정의 미로에 빠지고 말게 됐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도대체 왜 이렇게 그들과 친구가 되길 어려울까라고 생각해 보다 문득 한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한국에서 그들을 만났다 가정하면 내가 그들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했을까? 정말 잘 맞았음 그렇겠지만 대답은 아니 에 가까웠다. 굳이 친구가 될 이유를 보기도 어려웠다. 왜? 난 이미 가족, 친구 있고 언어적 문화적 어려움 없이 잘 지낼 수 있으니까. 현지인으로 살던 한국에서는 이민자들을 난민들을 만날 기회도 또 그러한 기회들을 찾지 않았다. 굳이 찾지 않아도 현지에서 문제없이 잘 살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들의 반응 및 태도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고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런 결과 이래저래 지금은 가끔이라도 한번 보는 현지인 친구들이 있고 여기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사람을 대하는지 등을 보고 그들의 문화의 적응하려고 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지나, 내가 바라보고 있는 노르웨이에서 거주 중인 사람들의 삶이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살고 그리하여 행복함까지 더해준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단지 행복한 것에 대한 기준, 레벨, 기대치가 다른 것 같았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물욕이 없는 편이었다. 또 미래에 거창한 계획과 목표를 세우지 않고 더 잘되고자 경쟁에 뛰어들기보다는 자기가 현재 버는 것에 만족하는 편이었다. 또한 일을 우선순위로 두는 경우도 더더욱 보기 힘들다. 그리하여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발전이 매우 느리게 일어난다.

음식, 패션 트렌드 또한 그러하다. 막차의 막차를 타는 느낌.


잔잔하지만 삶이 퍽퍽한 건 왜일까?

경쟁이 심하지 않고 그냥 만족하며 살 수 있음 행복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나 또한 그들의 잔잔한 삶이 어떨 땐 와,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라고 신기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하지만 잔잔한 물결처럼 찰랑이는 삶 속에 고민과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매일 반복적인 삶 그리고 새로움이라 느낄 만한 것들은 가뭄에 콩 나듯 나고 누구 하나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아 내 인생 내가 멋대로 살아도 타인의 눈치를 볼 일도 없지만, 그만큼 타인의 삶에 관심이 없다. 누군가가 내 인생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일도 전혀 없는 잔잔한 삶이지만 아이러닉 하게도 포근한 느낌보다는 퍽퍽한 느낌을 준다. 그리하여 노르웨이에도 우울증을 겪는 이들이 꽤 많다. 어느 누구한테 마음을 터놓을 수가 없는 현실은 비슷한 것 같다. 가족이라도 친구라도 남이라도.

그래서 그동안 내가 노르웨이어 배우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더군다나 입 밖으로 내뱉기 망설여졌던 것 같다란 생각이 든다. 마음적으로 소통이 안되니, 그들과 현지언어로 대화하는 것에 대한 의미도 재미도 크게 느낄 수 없었다.

노르웨이어를 유창하게 하는 이민자를 보며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막상 나의 미래를 그렇게 그려보진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이민자로서 나름 참 열심히 살았다 생각하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도 있지만, 나와 다른 언어권, 문화에서 오는 소외감과 더불어 그리고 언어라는 한 틀 주변에서 계속 맴돌고 있는 나를 볼 때 설렘 그리고 좋은 추억만 가득하던 여행자의 경험과 달리, 이민자의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라는 게 비로소 와닿기도 한다.

이민자의 무게, 그리고 그 무게가 주는 삶 속에서 여전히 고민과 걱정이 있지만 그로 인한 배움과 성장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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