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김밥

오래도록 씹어도 삼킬 수 없는

by 유림


어릴 적, 새학년 새학기를 맞는 것에 대한 마음은 섞여버린 바둑알 통처럼 흑과 백으로 뒤엉켜 있었다.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날 기대감과 설렘도 컸지만, 학기 초마다 실시하는 가정환경조사처럼 잔인한 시간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편부모 가정에 대한 날선 시선은 그 시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새학기가 기다려지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소풍이었는데, 그 역시 마음속에서 늘 희비가 교차했다. 놀이동산에 가는 일이 세상 무엇보다 행복할 나이였지만, 마냥 좋을 수만도 없었다. 핑크빛 소풍의 꿈을 검게 말아버린 ‘김밥’때문이었다.


소풍의 또 다른 별미 김밥. 요즘은 시중에서 손질된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고 분식집, 김밥전문점도 많아져 저렴한 가격에 사먹을 수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김밥이나 잡채처럼 손 많이 가는 음식은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다.





놀이동산을 실컷 누빈 후 점심시간이 되면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서로 자랑이라도 하듯 도시락을 펼쳐보였다. 햄, 달걀, 게맛살, 시금치 등 각종 재료가 빼곡이 들어있는 김밥을 입 안 가득 물고 있는 친구들의 표정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해보였다.


처음 아빠의 김밥을 소풍에 가져간 날을 잊을 수 없다. 뚜껑만 매만지다 고심 끝에 열어본 내 도시락 안에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검은 밥과 채소가 뒹굴어 다니고 있었다. 아빠가 새벽부터 분주히 만들던 김밥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이 터져버렸고 결국 나도 울음이 터져버렸다. 속상한 마음도 모른 채 위장은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왔고 난 밥과 재료들을 섞어 우걱우걱 삼켰다.


아빠의 김밥이 친구들의 김밥보다 좋은 점도 있긴 했다. 친구들의 담백한 김밥과는 달리 아빠의 김밥은 단짠의 극강이었으며 시금치, 당근처럼 먹기 싫은 채소들은 넣지 않고 먹고 싶은 재료만 넣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아빠의 김밥은 변화했다. 어떤 날에는 김밥에 김치를 넣기도 했고 어떤 날에는 참치를 넣기도 했다. 아빠의 열정과 나의 기대와는 달리 여전히 김밥은 터졌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맛만큼은 날로 진화해갔다는 것이다.

중학생이 되어선 “아무렴 어때~ 맛만 있으면 되었지!”라는 내 말에 둥글게 말려있던 아빠의 등도 펴지기 시작했다. 다가올 소풍이 마냥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중3 봄소풍, 마침내 아빠의 김밥은 터지지 않았고 나는 친구들 앞에서 떳떳하게 도시락을 꺼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빠의 마지막 김밥이 되었다. 오십춘기 아빠와 사춘기 나는 더 이상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터져버렸다.


성인이 되고서 더는 소풍을 가는 일도 김밥을 싸는 일도 사라졌다. 그리고 영영 내 곁에 머물 줄 알았던 아버지도.




봄마다 찾아오는 아버지의 기일, 김밥을 말았다. 검은 김 위로 흰 눈 같은 밥을 소복이 올린 후 갖은 재료를 넣고 꽉차게 말았다.

납골당을 찾았다. 영정 앞에 챙겨온 도시락을 올려놓은 후 김밥 한 점을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김밥과 함께 터져버린 마음. 까슬한 밥알이 입 안을 맴돈다. 오래도록 씹어도 삼킬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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