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세이 <외로워서 떠났다>
지난밤 한 달 치 짐을 쌓다 풀었다 하느냐 늦게 잠들었는데도 간만의 여행에 몸 안의 세포들이 한껏 들떴는지 새벽 일찍 눈이 떠졌다. 여느 때처럼 라디오를 켜고 주섬주섬 몸을 일으키는데 어느 성악가가 기다렸다는 듯이 우렁찬 목소리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찬송하고 있었다(내겐 여러 의미에서 올해 맞이하는 10월의 첫날은 멋진 날이 맞았다).
10월 하면 저 노래가 자연스레 떠오르듯 9월엔 ‘earth wind, fire’의 ‘september’, 12월엔 ‘wham’의 ‘Last Christmas’ 등 계절 혹은 그 달을 대표하는 곡들이 있고 매해 어디에 있든 한 번 이상은 꼭 듣게 된다. 노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여행지 역시 맞이하는 계절에 따라 우선 생각하게 하는 곳들이 있고 그런 곳들은 잠시 마음만 머물게 해도 좋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가을에 제법 어울리는 곳이다. 소양강, 닭갈비, 감자빵 등등 이곳을 찾는 이유도 떠올리는 것들도 각기 다양하지만, 나에게 ‘춘천’은 ‘기차’로 이어진다. 언제부턴가 춘천에 갈 땐 왠지 기차를 타야 할 것 같은 강박은 왜 생겼는지 의문을 품으면서도 어느새 코레일 사이트에 들어가 춘천행 티켓을 끊고 있었다. 아마도 그 노래 때문일 것이다. 몇 해에 걸쳐 여러 가수에 의해 리메이크 되는 노래. 끊임없이 불리는 것은 그만큼 그 노래가 시간이 흘러도 촌스럽지 않다는 것, 사라지길 바라지 않는다는 것 아닐까.
노래든 기억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무 살이 되던 해 누군가와 함께 처음 타보게 된 기차. 완행열차가 더디 가기를 바라며 나누었던 수많은 이야기들. 무덤 속으로 보내기 싫은 추억들이 나를 다시 춘천으로 부른 것일 수도 있겠다. 그곳에 가면 같이 걷는 이의 손등만 스쳐도 볼이 발그레 해지던 그 시절의 나를 아주 잠시라도 만날지 모른다는 기대와 함께.
그렇게 ‘춘천 가는 기차’를 들으며 열차표를 예매하는 순간,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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