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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림 Oct 15. 2021

원룸살이

여행에세이 <외로워서 떠났다>


스물 하나에 첫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일년 간 빠듯하게 모은 500만원으로 지하철역 부근에 위치한 집을 구했다. 욕실 하나 달린 단칸방이었는데, 세탁기 둘 곳이 없어 일주일에 한번씩 빨래가방을 들고 집 앞 세탁소를 찾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두평 남짓한 방에 미닫이문을 달아 잠자는 공간과 주방이 분리된 것이었다. 그 좁은 방에 친구들을 불러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했다. 작은 공간이지만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은 넉넉했다. 


그 후로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세탁기 둘 곳은 물론 방의 크기는 커져갔다. 하지만 새로운 고민 역시 생겼다. 방의 갯수가 늘다 보니 공간을 채우기 위한 가구며 인테리어에 도움이 될 만한 소품까지 사들이기 시작했다. 옷가지만 챙기면 되었던 처음과 달리 살림살이가 점차 늘어났고 더 넓은 공간은 물론 안전을 위해 대로 변에 위치해 있어야 했고, 이왕이면 전망도 좋았으면 했다. 더 많은 돈이 필요했고 원하는 집에 살기 위해서 원하는 삶을 포기해야 했다.


결혼 후 혼자 지내던 15평의 오피스텔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주변 상권이나 인프라가 잘 조성된 신도시였기에 굳이 터를 옮길 생각은 없었다. 집테크가 대세라는 친구들의 말에도 별 관심을 두질 않았다. 그런데 혼자 살 땐 어느 정도 여백이 느꼈던 집이 어느 순간부터 빽빽하게 채워져갔다. 둘이 함께 탈 자전거도 둬야겠고 김치냉장고도 사고 싶어졌다. 결단을 내리고 영끌까지 해서 구도심의 30평대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대출금 갚을 생각도 막막했지만, 그보다 당면한 문제는 전에 살던 집보다 두 배나 큰 이 공간을 어떻게 채우냐 였다. 이사하고 한동안은 택배박스 뜯고 치우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일년을 보내니 작은방까지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해결되지 않은 것은 두배가 된 청소시간이었다. 


춘천에서 머무는 동안 한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여행이 아니라 사는 것처럼 지내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낯선 곳에서 조금이라도 익숙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짐을 풀고 다시 싸는 일에 대한 에너지 소모도 싫었다.


내가 지내기로  한 숙소는 닭갈비골목, 육림고개 등 춘천의 먹거리 즐길거리가 모여있는 시내에 위치한 곳으로 기차역에서 도보 15분 정도의 거리다. 3층짜리 건물로 구성은 이렇다. 1층은 차를 마시고 책을 볼 수 있는 공용공간이 마련돼 있으며, 2층은 객실과 한쪽에 간단한 조리 및 취식이 가능한 작은 주방공간, 내가 묵을 3층에는 객실과 직원공간이 있었다.  


직원에게 이용수칙 및 주의사항 간단히 안내받은 후 방에 들어섰다. 욕실 하나 딸린 3평 남짓의 공간에는 취식에 관한 용품을 제외한 1인용 침대, 책상, 의자, 스탠드, 에어컨, 캐비넷, 옷걸이가 구비돼 있었다. 지내다 보니 작은 공간에 대한 우려와 달리 단점보다 장점이 많았다. 우선 여러 면에서 시간단축 되는 것들이 많았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 한개만 열면 환기 끝이다. 바닥 면적이 넓지 않으니 청소기가 딱히 필요 없고, 속옷이나 양말처럼 간단한 빨래는 욕실에서 하면 된다. 모든 것이 한 공간에 모여 있으니 찾아헤맬 일 없고 빠르게 해결된다.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스탠드 하나만으로 방 안 전체를 밝힐 수 있다. 


20년 만에 다시 시작한 원룸살이가 썩 나쁘지만은 않다. 이곳에 머물며 작은 공간이 주는 무궁무진한 매력을 하나씩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에세이<외로워서 떠났다> #원룸살이



작가 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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