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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림 Oct 15. 2021

막걸리카페와 시인

여행에세이 <외로워서 떠났다>


춘천에 오고 초반 며칠은 날씨가 좋더니 이번주는 내내 비소식이다. 종일 내리는 비 덕분에 자전거도 못 타겠고 방 안에만 있기도 답답하던 차에 이곳에 오면 한번은 도전해보려던 혼술 생각이 났다. 비도 오니 주종은 막걸리면 되겠고, 혼술하기 좋은 곳을 열심히 검색했다. 슬리퍼에 편한 복장으로 갈 생각이었기에 시내 중심에 있는 곳들은 아니되겠고, 숙소 근처에 있는 곳으로 알아보던 중 괜찮은 한곳을 발견했다. 보통 막걸리집 하면 주점이 떠오르는데 갤러리카페를 연상시키는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고, 판매하는 막걸리 종류도 다양했다. 문제는 혼자 간단히 먹기엔 안주의 양이나 가격이 부담스럽다는 점이었다. 그러다 문득 한사람이 떠올랐다. 


첫날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에게 같은 층에 묵는 사람들에 대해 물었다. 내가 있는 3층은 주로 장기숙박객들이 묵고 있었기에 아무래도 간단한 정보는 알아두는 게 좋겠다 싶었다. 가장 관심이 가는 방의 주인은 복도 끝 방에 머무는 사람이었다.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였는데 이곳에서 두달 째 소설을 집필중이라고 했다. 워낙 두문불출하여 얼굴 보기 힘들다 했는데, 운이 좋게도(?) 인사를 나누는 기회가 생겼고 등단작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방으로 돌아와 그녀가 쓴 단편소설을 읽었다. 트랜스젠더와 대리모라는 흔치 않은 소재로 써 내려간 이야기는 과함이 없었다. 담담했고 담백했다. 일반 소설과는 달리 문장마다 시적 운율이 강한 느낌이 들었고, 한문장 한문장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가 느껴졌다. 그녀가 더욱 궁금해졌다.


책에 대한 소회도 풀겸 건너방의 문을 두드렸다.

“비도 오는데, 막걸리 한 잔 하실래요?”

“좋아요! 1층에서 5시에 만나요”


추리닝 차림의 나와 달리 곱게 단장하고 내려온 그녀와 함께 길 건너 막걸리집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섰는데 아무도 없었다. 밥 지어지는 소리가 나는 걸 보니 주인장이 잠시 자리를 비운 모양이다 생각하고 가게를 둘러보는데 주방 벽면에 재미있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원래는 카페를 하려고 했었다…’ 그러고 보니 상호가 ‘OO막걸리카페’ 였다. 뭔가 사연있는 공간이다 싶었고, 나중에 다시 찾아와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어봐야지 싶었다. 


적당한 자리를 잡고 각자의 소개를 나누기 시작했다. 문창과를 졸업한 그녀는 식품회사 일을 하다가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소설가의 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나는 나를 무어라 소개할까 고민하다 여행작가라고 했다. 십여 분쯤 지나자 양손 가득 장바구니를 든 사장님이 들어섰다. 마침 대파가 떨어져 시장에 다녀오시는 길이라며 문 열어놓고 가기를 잘하셨다 했다. 우린 막걸리와 해물파전을 주문했고 사장님은 미안함에 이것저것 찬을 내주셨다. 


한병 두병 이야기는 한창 무르익었고, 식어가는 파전이 안타까워보였는지 사장님은 지나가다 걸음을 멈추고 물으셨다. 

“이야기가 더 맛있죠?” 

사장님의 말에 모두 한바탕 웃었고, 그제서야 잔을 내려놓고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어느정도 취기가 오를 때즘 자리를 정리하기로 했다. 두고가는 물건은 없는지 살핀 후 가게를 나서려는 찰나, 사장님이 우리를 부르셨다. 

“아가씨들, 여기 마음을 두고 가시네”


숙소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사장님은 아마도 시인이지 않았을까.




작가 유림

http://www.instagram.com/yurim.artist

http://blog.naver.com/yurimchoi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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