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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림 Nov 05. 2019

필름사진의 매력

사진 그리고 수다 : 묻기에 좀 애매한 사진에 관한 모든 것

2000년 초반, 사진을 배우기 위해 FM2라는 기계식 필름카메라를 구입했다. 첫 촬영한 흑백필름을 직접 현상하던 그 순간의 짜릿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과거 한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해선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필름을 구매해 사진을 찍은 후 이를 현상하고 인화하기까지 모든 것이 느리고 불편했다. 별도의 현상기가 필요했던 컬러사진과 달리 흑백사진은 현상부터 인화까지 직접 할 수 있었다. 어디 가서 ‘나 사진하는 사람이요’라고 말하려면 위 과정을 모두를 할 줄, 자알 할 줄 알아야 했다.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었다. 촬영의 단계는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현상과 인화는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붉은 빛으로 채워진 암실에 들어서면 시큼한 약품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촬영에서 부족했던 노출은 현상이나 인화 과정에서 보완할 수 있었는데 약품의 온도나 시간, 교반하는 힘 조절이 중요했다. 명암의 대비나 질감의 표현, 조색처리 등의 효과 역시 현상이나 인화과정에서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필름을 확대기에 꽂고 인화지에 노광을 준 후 일정시간 동안 현상액에 담가놓으면 상이 흐릿하게 맺히기 시작하는데 수세와 건조과정까지 마치면 비로써 사진 한 장이 완성된다. 그 길고 더딘 여정을 마치고서야 한 장의 결과물을 보고 웃거나 울었다.

우리가 체감하는 1초라는 시간은 굉장히 짧게 느껴지지만 사진에 있어서의 1초는 굉장히 긴 시간이다. 0.1초에 의해서도 결과물이 달라지기 때문에 전 과정을 꼼꼼하고 성실하게 수행해야 제대로 된 한 장의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사진들은 수십 년이 지나도 쉽게 바라지 않는다.  

필름사진의 또 다른 매력은 우연성에 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필름을 모르고 사용했다거나 현상액 비율이나 확대기 노광시간이 잘못 됐을 경우 등등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 그 앞에서 울상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우연한 실수가 멋진 걸작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어찌 보면 필름사진은 우리의 인생과도 닮아있다. 어느 한 순간도 중요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 노력한 만큼의 대가가 따르는 것, 우연이 만들어낸 것들로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맞닥뜨리는 것 또한 닮았다. 삶의 빛나던 순간들이 쉽게 바라지 않는 것 역시.

디지털시대에 접어들면서 모든 것이 쉽고 빨라졌다. 사진의 단계 역시 대부분 촬영에서 끝난다. 바로 확인 가능한 사진들은 대개 컴퓨터 하드에 깊이 잠들어 있거나 어울리지 않은 필터 옷을 입은 채 온라인공간을 유랑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순간들은 잊혀진다.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 필름사진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디지털시대에 태어나 신속 정확 편의에 길들여진 그들은 왜 아날로그로 회귀하려고 하는 것일까?








사진작가 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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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그리고수다 

#묻기에좀애매한사진에관한모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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