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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Sep 05. 2024

엄마를 거절했다.

[제발 나를 편하게 여기지 마]


'아픈 손가락'이라는 말은 대부분 자식을 두고 표현하는 말이다.

나에게는 친정 엄마가 그런 느낌이다.


엄마와 정서적으로 분리가 되지 않았다는 말을 처음 들었던 때는 남편 외도 때문에 상담을 다닐 때였다.

당시 상담사는 남편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엄마와의 관계를 짚었다.

(내가 외도녀보다 남편이 더 밉다는 말로 시작된 상담을 했던 날로 기억한다.)


엄마에 대한 나의 숭고한 사랑을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마마걸 정도로 치부하는 거야?

반감이 들었으나 그만두지 않고 상담 과정을 다 마친 건 정말 잘한 일이다.


엄마와의 분리 작업은 힘들었다.

그러나 해야겠다고 다짐한 것은 나와 똑 닮은 딸을 발견하고 나서다.

일부러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어쩌면 그렇게 닮아 있는지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부모의 영향력이란...


지병을 여러 개 갖고 있는 엄마의 아프다는 호소에 대해 동생은 앓는 소리의 절반 이상은 엄살이라 말한다.

내가 다 받아주며 응석받이를 만든다고 한다.

그런 동생을 정이 없다며 타박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좀 모질게 표현은 해도 객관적 상황정리는 동생이 훨씬 잘하고 있다.


여전히 나는 엄마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가끔씩 판단이 흐려지기도 한다.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느라 힘을 주니 어깨가 아프다는 말에 별 효과도 없는 치료를 한참 다니느라 엄마 몸을 고생시키기도 하고 많은 돈을 허비하기도 했다.

호전되지 않으니 지친 엄마가 그만 다니겠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그 통증은 온 데 간 데 없다.

생활 습관만 바꾸면 나아지는 습관병이었나 보다.


다른 사람에게는 거절을 좀 하는데 엄마한테는 그게 잘 안 되는 게 나도 이해가 잘 안 된다.

요즘은 조금씩 거절 연습을 한다.


그저께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요양사와 치과에 다녀왔는데 병원에서 임플란트를 하라고 했단다.

틀니는 엄마 본인이 싫다고 하니 아마도 그걸 권유한 듯하다.


'87세의 나이에도 하는구나'


그러나 통증에 민감한 엄마가 그걸 견뎌낼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그걸 하고 나면 치아가 아파서 못 먹는 일은 없을 테니 잘 되면 좋겠다.

임플란트 예약을 했더니 치과에서는 보호자와 함께 오라고 했단다.


엄마가 지병이 많으니 리스크가 있어서 그런가 싶다.

엄마는 나에게 동행하자고 했다.

정년퇴직한 오빠(요즘은 뭘 배워서 봉사활동을 다니는 것 같다.)도 있고 보험업을 하는 올케도 있다.

자영업으로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운 언니와 동생들도 있다.


"엄마. 나는 회사에 매여있는 몸이야. 나한테 가자고 하면 어떡해."


"나는 네가 편해서 그러지. 시간 좀 내서 오면 안 되냐?"


"내가 편해서 그런 건 알겠는데, 오빠한테 먼저 연락해."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절이다.

오죽하면 올케는 나에게


"아가씨는 엄마가 부르면 오려고 어디서 대기하고 있어요?"


라고 했었다.

물론 그때는 부동산업을 해서 시간이 자유롭긴 했지만 엄마가 부르면 만사 제치고 갔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엄마를 생활의 1순위에 두고 살았다.

나의 자유의지로 결정한 일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엄마라는 감옥에 산 것 같은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거절할 때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측은지심 때문이다.

공감 못하는 내가 이상하리만치 엄마에게는 사무치게 마음을 움직이는 그 무언가가 있다.

그러나 그 감정의 실체가 공감이 아니라 정서적 분리를 하지 못한 비정상적 감정일 수도 있다.


매주 엄마를 모시고 교회에 간다.

혼자 외출이 힘들기도 하고 분가하면서 혼자 남겨진 엄마가 안쓰러워서 자처한 일이라 후회는 없다.

때때로 나의 컨디션에 따라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전심으로 하지 않기에 견딜만하다.

나의 온 마음과 정성을 쏟아서 섬겼다면 벌써 나가떨어졌겠지.

일주일에 한 번 얼굴 보고 함께 교회에 다녀오는 것으로 내 마음속에서는 할 일을 했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 이 정도까지만'


그러지 않고 예전처럼 하다가는 생색이 하늘을 찔러 엄마를 미워할지도 모른다.

요즘 가끔 엄마에게 짜증을 내며 언성을 높일 때가 있는데 엄마는 그런 나를 낯설어한다.

항상 '네가 제일 착해' 하면서 나를 편하게 생각하고 쉽게 부렸던 것을 기억한다.


까칠한 동생 부부가 올 때는 밥이 있어도 새로 쌀을 씻어서 밥을 안치지만 나와 남편이 갈 때는 양푼에 남은 반찬을 넣고 비벼서 수저만 꽂아주는 엄마였다.


"0 서방은 아무거나 잘 먹으니까 너무 좋아." 하면서....


서운해도 말을 못 했고, 그런 밥상의 차별도 전혀 못 느끼듯 행동하는 남편만 불쌍하게 생각했다.

심지어 내가 밥을 먹고 있는 중에도 까칠 동생이 들어오면 밥을 차려주라고 한 적도 있다.

그러면서 내 마음에 생긴 나름의 논리는 '편하게 여김=무시함'이다.


지금은 나도 표현을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거절도 하게 된다.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거절 한마디 참고 몸으로 고생하는 게 쉽기도 하다.


오빠한테 전화하라고 해놓고 계속 궁금하다.

연락은 했을까.

어떻게 되었길래 나한테 전화가 없는 걸까.

오히려 쿨한 엄마보다 집착하는 내가 더 문제다.

결국 전화했다.

엄마는 나의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건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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