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되면 항상 나는 며칠 전부터 변비와 두통이 있었다.
전혀 가정적이지 않은 남편과 시월드에 간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스트레스였기 때문이다.
시부모님 댁도 아니고 종갓집인 큰 아버님댁으로 가면 나와 동서는 하루 종일 손님맞이 상차림에 바빴다.
집안을 통틀어 며느리가 우리 둘 뿐이니 어쩔 수 없었다.
얼굴도 모르는 손님들이 와서 큰 아버님께 세배를 하고 나면 떡과 전을 준비한 술상을 차려 갖고 들어갔다.
손도 대지 않고 그대로 나오는 술상 위의 음식들은 버리자니 아깝고, 다시 바구니에 넣자니 찝찝했다.
대화를 하며 침도 튀었을 테고, 누군가 먹던 음식이라는 생각에 다른 사람에게 먹게 한다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것들도 다 돈이라며 큰어머니는 한입 베어 문 자국이 있는 것들도 버리지 못하게 하셨다.
어떨 때는 손님이 가기 전에 다른 손님이 와서 물렸던 상을 다시 갖고 들어가기도 했다.
나는 그 집 음식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청결을 믿을 수 없어서 억지로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았다.
잘 먹지도 않았으나 그나마 먹은 것도 뱃속에서 나가지 못하고 차곡차곡 쌓였다.
안 그래도 예민한 장 때문에 변비가 있는데 큰댁의 화장실은 괴로움 그 자체였다.
내가 결혼한 이듬해에 큰댁은 시골집을 리모델링했는데 임시로 만든 농막처럼 조악스러웠다.
주방을 확장하고 싱크대를 새로 들여놓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면적이 넓어진 만큼 온통 짐으로 가득했다.
짐과 짐 사이에는 거미줄과 먼지로 지저분했고, 변통이 그대로 보이는 마당 한 구석의 재래식 화장실은 여전했다. 대신 주방옆에 양변기를 앉힌 욕실을 만들었다.
욕실은 안방 창문의 처마밑에 지붕을 연장하고 벽을 쌓아 만들었는데 변기에 앉아 있으면 안방에서 하는 말소리며, TV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배에 가스는 가득 차서 꿀렁거리는데 혹시나 커다란 안방 창문으로 내 모습을 보는 건 아닐까, 혹시 용변 보는 소리가 들리는 건 아닐까, 누가 노크라도 하면 어쩌나, 별 생각이 다 들고 긴장이 되니 변비는 더 심해졌다.
나는 그때 종종 항문이 없어 죽었던 민비의 왕자를 생각했었다.
나의 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은 큰댁에 가면 어른들 계신 안방에 같이 누워 하루 종일 TV를 보며 먹기만 했다.
밉고 보기 싫어서 다른 방에서 아기와 함께 있으면 가끔 큰어머니나 어머님이 오셔서
-아비가 널 찾는데 한번 가봐.
하셨다.
안고 있던 아기를 눕혀 놓고 안방으로 가면
-시원한 식혜 한 그릇만 가져와.
하며 얼굴에 웃음기를 띠고 먹을 음식을 찾았다.
굳이 다른 방에 있는 나를 부르러 온 시어머니나 큰어머니도 싫었고, 남편은 말해 뭐 해. 죽이고 싶었다.
처음 몇 년간은 층층시하 어른들이 어려워서 집에 가자는 말도 잘 못하고, 모기소리만 한 목소리로 남편에게 말하면 남편은 못 들은 체하거나 뭐라고? 크게 말해. 하면서 약을 올렸다.
10년 정도 지나니 나도 겁이 없어졌고, 안 그래도 남편과 살기 싫은데 뭐 때문에 시어른들 비위를 맞추나 싶어서 조금씩 내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나 지금 집에 갈 건데 자기는 더 있다 올 거지?
여전히 겁 없는 남편은 내 말을 무시하고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유, 왜 벌써 가려고 해. 이따가 점심 먹고 나면 시누이들 올 텐데 보고 가야지.
늘 그렇듯 큰어머니는 사촌 시누이들이 올 때까지 가지 말라고 말리셨고, 그러면 당연히 우리는 또 자고 가야 했었다.
-저도 친정 가려고요.
길게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고, 설명해 봤자 다들 꿈쩍도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자동차키를 들고 나와 마당에 세워진 차에 시동을 걸었다.
내 행동에 가장 당황한 사람은 남편이 아닌 큰어머니였다.
-쟤가 진짜 가려나 보네.
부랴부랴 명절음식을 싸기 시작하셨다.
-저 아무것도 안 가져 가요. 먹을 사람 없어서 다 버려요. 싸주지 마세요.
나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솔직히 큰댁에서 가져온 음식에 나는 입도 대지 않았고, 남편이 먹다가 결국 남은 건 버리기 일쑤였다.
아들에 대해 너무 잘 아는 시어머니는 항상 내 편이셨는데, 놀라서 안방으로 뛰어가 남편을 채근하며 빨리 따라나서라고 했다.
그 후로 남편은 내가 가자고 하면 나무늘보처럼 느릿느릿하긴 했지만 옷을 입고 따라나섰다.
결혼 36년.
지금쯤은 나도 누군가의 시월드가 되어 있어야 하지만, 장성한 애들이 아직 미혼이라 명절은 주로 집에서 조용히 보낸다.
혼자가 되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시동생집으로 몇 년 전까지 왕래를 했으나 동서도 며느리가 생기고 손주까지 보게 되니 내가 가는 게 민폐인 것 같아 지금은 안 간다.
남편도 집에 없고, 아들도 독립해서 달랑 딸과 둘만 있는데 여전히 나는 명절음식을 만든다.
왜 만드는지 나도 모르겠다.
며느리 근성이 아직 남아 있는 건지, 아니면 조용한 명절에 적응이 안 되는 건지.
이번 명절에는 양을 좀 줄인다고 해도 이렇다.
딸은 입이 짧아서 당일에 조금 먹고 나면 손도 안대고, 나도 부치느라 종일 기름 냄새를 맡아서 그런지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명절음식 안 하는 딸친구에게 한 접시, 여자 친구와 먹으라며 아들집에 한 접시, 나머지는 친정에 모두 싸다 줬다.
이번 명절에도 결심한다.
'진짜 내년에는 하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