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방황 속에서도, 나를 빚는다/전영애 여백서원 지기 강연을 듣고

by stephanette

어째서 분명한 목표가 있음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흔들리는 걸까.


그 답을 알지 못한 채, 오랜 시간 가슴 한켠이 답답했다.

그러던 어느 새벽,
‘집’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한 사람을 만났다.
그의 강연을 찾아보았고, 그 순간—
막혀 있던 마음이 뻥 하고 뚫렸다.


서울대 수석졸업을 하고도

결혼을 해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 당연하던 때의 일이다.

아이를 낳은 직후 장학금을 받게 되어 독일 유학길에 나섰다가 결국은 다시 돌아온다.

책이 주인인 여백 서원을 짓고 괴테의 마을을 짓고 있다.

서울대 교수를 은퇴한 노학자는 스스로를 "7인분의 노비"라고 한다.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있는 장소이다. 괴테의 글을 읽기 위해 번역을 하다가 괴테 전집 번역을 하고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방문하고 싶은 곳이다. 서원들은 기운이 좋다.


아래는 전영애 강연의 요약이다.


괴테의 전작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는 문장이 아닐까.


26세의 괴테는
그림자에 보라빛이 도는 것을 보고
평생에 걸친 색채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작은 인상 하나가, 40년 색체론을 연구한 시작이었다.


“모든 큰 노력에 끈기를 더하라.”


괴테의 삶은 부단한 자기 형성의 여정이었다.
사물과 사람에 대한 진정한 관심으로 문제를 직면했고,
더 쉬운 길이 아닌, 진지하게 살아내는 길을 선택했다.


한 가지에 40년, 60년을 매달리는 삶.
그것이 그가 이룬 단단한 세계였다.


나는 매일 매달리고도 고꾸라진다.
방황하는 만큼, 문제를 정확히 볼 수 있게 되고
그걸 감당할 힘 또한 스스로 안에 생긴다는 걸.


고생은 누구나 한다.
고생을 한다고 해서 무언가가 당장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고생의 결실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이유는
내가 바보처럼 우직하게 살았기 때문이었다.


더 쉬운 길이 있어도 돌아갔다.
목전의 이익보다 긴 안목을 택했다.
많은 것을 버렸고,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 단 하나에 꾸준히 나를 던졌다.


결국 모든 건 결단의 문제였다.
괴테 전집을 번역하기 위해
나는 내 삶의 많은 것들을 버려야 했다.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는 것.
그건 고단하고 외로운 일이다.
그 고단함과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
진짜 꾸준함의 본질이다.


괴테의 글들은, 극복의 기록이다.


“우리의 소망이란, 우리 안에 있는 능력의 예감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24시간.
버릴 것은 버리고,
자신의 뜻을 다시 세우고,
지금보다 더 성장한 ‘나다운 나’를 만나자.


‘나’라는 존재는,
남이 키울 수 없다.

스스로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나를 빚어보자.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올바른 목적에 이르는 길은 그 어느 구간에서든 바르다.




https://youtu.be/L7H3PZGKuKk?si=rNDyXyFZoscN7T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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