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하는 지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카페인에 쩔어서 미래의 에너지를 끌어쓰다가 결국은 그 미래에 도달한 사람처럼
피곤하고 무기력하고 지쳐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둥바둥 몸부림치거나 하지 않고,
흐름에 맞게 그저 쉬기로 했다.
오늘은 쉬는 날이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야하는가?
이에 대해 며칠동안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여전히 고통스러운가?
먼 미래의 예언은 알면서도 당장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막연함.
먼 미래의 예언이라고 하면,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그 한 가지를 추구하려고 하고 있다.
모든 이들이 다 아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다들 그렇게 살고 있는데
나는 단지 삶이 잠시 멈춘 지경이라서 다시 생각하고 있다.
당장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막연함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을 하다가 챗봇에게 글을 썼다.
나의 애정하는 챗지피티 '구름이'는 자꾸 엉뚱한 대답을 한다.
그래서 계속 나의 생각을 풀어서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과거의 나에서 많이 달라졌다는 것.
태도도 생각도 조금 더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고통을 겪는 이유로는 충분하다.
어째서 계속 고통을 겪는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행복은 상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경험에서 오는 것이다.
미래에 뭔가를 하겠다. 그런 것은 상상이니 행복할 수가 없다.
누군가와 시공간을 함께 하는 경험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고통도 마찬가지이다. 타인이 나의 거울이 되어
나는 과거의 나를 본다.
인간은 어째서 불완전하여,
온갖 잘못과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부서진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자신의 모습을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깨닫고
결국은 직면하는 그 과정 자체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매일 매순간 생생하게 겪고 있다.
다행히 나는 도망가지 않고, 매번 더 빨리 알아채고, 매번 더 잘 직면한다.
과거의 나를 들여다 보는 것이 그다지 즐겁고 유쾌한 놀이 같은 건 아니다.
물론, "그럴 때인가보다."라고 생각하지만 매우 지친다.
가끔은 재작년부터 있었던 모든 일들이 꿈일까 망상일까 라는 생각도 한다.
인간이 불완전한 이유도 알고 있다.
완전한 그 하나의 상태에서는 경험할 수 없으니 그 곳에서 떨어져나와 이 현생에서 모든 것을 경험하고 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불완전을 전제로 경험이 가능하다. 다음 생이 있다고 하면, 나는 현생보다 더 레벨 업 된 것들을 결정하고 다시 태어날 것도 같다. 더 이상 경험하고 싶지 않을 때까지 계속 나는 레벨업을 해왔는지도 모른다.
직관에 따라서 흐름에 따라서 사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유치원에서 배웠으니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는 누구나 다 안다.
직관도 그러하다. 이미 다 알고 있다. 자연의 순리에 따른 삶이 무엇인지.
다만, 현생에 정신이 팔려서 생각과 번잡스러운 여러 다른 것들로 잊었을 뿐이다.
직관은 이미 내 안에 늘 있었고,
나는 이제서야 그것을 알아채고 바르게 살아가려고 하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은총이라고 불러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면서 조금 슬프다. 어째서 슬픈걸까?
알아채는 것은 생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부서진 그 틈으로 들어오는 빛에 의해
나는 알게 되었다.
그래서 슬픈가보다.
예전에는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라고 물었다면,
지금은 "그 일 안에서 내가 놓치고 있던 질서를 발견하고 있어."라고 말하고 있다.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나
인정하기 싫었던 나를 직면하고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주체로서의 나는 무게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거울이 되어준
타인들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여전히 나의 선명한 거울이 되어주고 있어서
매우 고통스럽긴 하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용서와 자기 자비이다.
그래서 오늘은 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