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연민이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

강함이라는 갑옷을 벗고 나서야, 진짜 나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by stephanette

낮에 아는 분을 만났다.

오랜시간 의지처로 삼는 분이다.


막상 나의 내밀한 이야기는 하지 못한다.

굳이 좋은 시간에 어려움을 토로하고 싶진 않다.


그분도

나도

가장 가까운 이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 점이 잘 통한다.


그런 점에서 브런치에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자체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은

살면서 자주 일어난다.


오래 전에 나의 사주 풀이를 봤던 이야기를 해준다.

육각형의 도형 그래프로 보면

보통은 76점, 69점, 85점... 그런 식으로 나온다고 한다.

나의 사주는 99점이었다면서

풀이도 다른 이들의 것과는 달리 간단하게 '강한 사주'라고 나왔다고 했다.

그게 궁금해서 강한 사주가 무엇이냐고 다른 분께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 풀이를 듣지 않아도 무엇인지 안다.


전복의 힘

억압에서 벗어나는 힘

개혁의 힘

그리고 어떻게 해도 절대 죽지 않고 다시금 일어나는 의지


'평화의 시대'에는 영 쓸모 없는 능력이다.

수많은 난관에 봉착하여 재생하는 그런 삶이

딱히 좋은 것은 아니다.

고통에 대해서 말을 한다면 할말은 많은 것 같다.


어떻게 보아도 지금의 삶은

'나'에게 그다지 맞지 않는 것 같다.

때가 도래하여 에너지가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삶을 그만두고

다른 인생을 살아야 할 때라고도 생각한다.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한 번 살고 100년도 안되어서 죽을텐데

다른 삶을 산다고 해서 안될 것도 없지 않은가.

육체적 젊음이 부족하지만, 굳이 빨리 가야할 이유도 없다.


이상한 일이긴 하다.

나는 최선을 다해 완벽하게 살고자 노력했고

나에게 매우 혹독하고도 엄격했다.

끝까지 밀어붙여서 그 한계를 넘을 수 있도록.


그러나, 요즘의 나는 나의 부족함을 받아들인다.

나의 불완전성과 실수, 무능력,

짧은 생각과 감정에 뒤흔들리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해서.


어깨에 힘을 빼고

최선도 완벽도 당위도 의무도 다 내려놓는다.

버리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나에게 적당하게 맞는 것들을 하려고 한다.


나에게 자기연민이란 이런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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