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가학-피학의 굴레를 읽다
우리는 흔히 ‘가학과 피학’을 단순한 폭력이나 성적 일탈로만 이해한다. 그러나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그것을 훨씬 더 깊은 차원에서 바라보았다. 그는 가학-피학 관계가 단순히 한쪽의 지배와 다른 쪽의 복종이 아니라, 쾌락과 권력의 구조가 교차하는 장이라고 말했다.
들뢰즈에 따르면, 가학적 권력은 상대의 고통을 단순히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불편, 당혹, 굴욕을 통해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상대의 상처가 곧 자기 존재의 증거가 된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 구조를 낯설지 않게 발견한다. 누군가는 타인의 실수를 조롱하며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느낀다. 누군가는 약자를 곤란에 빠뜨리면서 스스로의 힘을 확인한다. 겉으로는 폭력이 아닌 것 같아도, 타인의 불안과 굴욕에서 쾌락을 얻는 순간이 바로 가학적 권력의 작동이다.
한편, 피학적 위치에 선 사람도 단순히 수동적인 피해자만은 아니다. 들뢰즈는 피학이 억압 속에서 저항과 의미를 조직하는 독특한 전략일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스스로를 희생자로 규정하면서 동시에 그 규정을 주도하는 주체가 되는 것. 즉, 고통 속에서조차 주체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가학-피학 권력은 일회적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쪽은 고통을 통해 힘을 느끼고, 다른 한쪽은 고통을 견디면서 자기 방식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형성된 나선은 반복되고, 그 안에서 권력과 쾌락은 서로를 강화한다.
문제는, 이 관계가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다. 고통이 단순한 사건을 넘어, 관계의 구조 그 자체가 되는 순간, 우리는 끊임없이 증폭되는 굴레에 갇히게 된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누군가의 가학적 권력에 갇혀 피학의 위치에서만 자신을 정의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도마조히즘적 권력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관계 속, 미묘한 감정의 교환 속, 일상의 언어와 행동 속에서도 작동한다. 들뢰즈의 사유는 이런 관계의 심층을 드러내며, 우리로 하여금 질문하게 만든다.
“나는 지금 어떤 권력-쾌락의 구조 속에 서 있는가?”
들뢰즈는 말한다. 가학과 피학의 관계는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쾌락과 권력의 구조다. 문제는 그 구조가 계속 반복되면서 한 사람을 가해자의 자리, 다른 한 사람을 피해자의 자리에 고정시킨다는 데 있다. 그 안에 머무는 한, 고통은 끝없이 증폭된다.
그러나 들뢰즈에게 벗어난다는 것은 단순히 가해자를 무찌르는 일이 아니다. 그 구조 자체에서 탈주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는 이 탈주를 'line of flight'라 불렀다. 기존 관계의 나선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흐름과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일.
고통에 갇혀 있던 욕망을 다른 곳으로 전환하고, “피학적 나”로만 규정되던 주체를 새롭게 발명하는 것. 그것이 들뢰즈가 말한 탈주의 방식이다.
글을 쓰는 일, 예술로 표현하는 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 나서는 모든 행위는 바로 이 탈주다.
고통 속에서 반복되던 권력-쾌락의 구조를 끊고, 다른 길을 열어젖히는 일.
들뢰즈의 질문은 결국 우리에게 이렇게 돌아온다.
“너는 그 고통의 구조 속에 계속 머물 것인가, 아니면 그 구조를 가로질러 새로운 흐름을 만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