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욕망을 위한 소품이 되는 과정
레비나스의 얼굴과 책임
“그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았다.
내가 한 말을 왜곡했고, 내 존재를 자기 이야기의 소품으로만 사용했다.
나는 어느 순간,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깊은 모멸을 느꼈다.”
개인적인 경험 같지만, 사실 이런 일은 우리 삶 곳곳에서 일어난다. 상대방이 나를 온전히 인정하지 않고, 자기 욕망이나 목적을 위해 도구로 사용할 때. 그 순간 우리는 존재의 존엄이 지워지는 폭력을 경험한다.
레비나스의 타자 철학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타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타자는 나와 근본적으로 다르며, 결코 내 소유가 될 수 없다.”
타자는 나와 닮은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 나의 이해 바깥에 있는 절대적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타자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존중과 책임의 태도로 마주해야 한다.
레비나스에게 타자의 얼굴은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외형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를 존중하라”는 윤리적 요청이다.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책임을 부여받는다.
타자를 도구로 삼는 폭력
하지만 현실에서 많은 관계는 이 원칙을 배반한다.
타자를 타자 그대로 인정하기보다, 자기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누군가는 타인의 이야기를 왜곡하여 자기 이익에 맞게 이용한다.
누군가는 타인의 존재를 조롱거리로 만들어 자기 우위를 확인한다.
누군가는 타인을 단순한 역할, ‘가해자’ 혹은 ‘피해자’, ‘도구’ 혹은 ‘장식품’으로만 규정한다.
이런 행위는 모두 폭력이다.
왜냐하면 타자의 고유성을 지우고, 자기 서사 속 소품으로 축소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험과 연결
나 역시 그런 폭력을 겪었다.
내 말은 사실과 다르게 변형되었고, 나의 몸과 존재는 상대의 권력과 쾌락을 드러내는 장치로만 사용되었다.
그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았다.
나는 ‘타자’로 존중받지 못했고, 오직 누군가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대상으로만 존재했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경험이었다.
타자와의 진정한 만남
레비나스는 말한다. 폭력의 반대는 타자를 완벽히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타자를 타자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존재 앞에서 책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즉, 타자를 내 언어와 틀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순간 폭력이 발생한다. 반대로, 타자가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다름 자체를 존중할 때 비로소 윤리적 관계가 시작된다.
우리에게 남는 질문
레비나스의 철학은 결국 일상 속 질문으로 돌아온다.
나는 타인을 정말 ‘타자’로 존중했는가?
아니면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내 서사의 소품으로만 취급한 적이 있지는 않은가?
누군가 나를 그런 방식으로 다루었을 때,
나는 어떻게 나의 존엄을 지켜낼 수 있었는가?
타자를 타자 그대로 마주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레비나스는 그것이야말로 윤리의 출발점이며, 폭력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