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억압

알지도 못한 사이, 보이지 않는 폭력은 나를 침묵시킨다.

by stephanette

보이지 않는 억압 – 부르디외와 상징적 폭력

폭력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큰 소리, 욕설, 신체적 위협을 떠올린다. 눈에 보이고, 직접적으로 상처를 남기는 방식 말이다. 그러나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다른 차원의 폭력을 이야기한다. 바로 상징적 폭력(symbolic violence)이다.


상징적 폭력은 직접적인 물리적 강제가 아니라, 언어와 규범, 문화와 관습을 통해 상대를 지배하고 침묵시키는 힘이다. 더 무서운 점은, 이런 폭력은 때로는 폭력으로조차 인식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은밀한 언어의 힘

상징적 폭력은 일상의 언어 속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너 때문이야.”
“그냥 가만히 있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이런 말들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상대의 책임을 전가하고, 침묵을 강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부르디외는 말한다. 언어는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라, 권력관계가 스며든 행위라고.
말하는 자의 위치가 힘을 가지면, 그 말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권력이 된다.


규범이 만드는 억압

상징적 폭력은 언어뿐 아니라 규범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너도 따라야 해.”

“이 정도는 참는 게 당연하지 않니?”

이런 말은 집단의 규범을 개인에게 내면화시키고, 스스로 억압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가시적인 폭력이 사라진 자리에, 더 교묘한 억압이 들어선다.


내가 겪은 상징적 폭력

나 역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직접적인 위협은 없었지만, 반복된 말과 태도는 나를 점점 침묵하게 만들었다.
사실을 말해도, 상대는 “네가 문제를 만든 거야”라며 되돌려버렸다.
결국 나는 입을 닫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해야 했다.


그때 느낀 건 신체적 폭력보다 더 깊은 상처였다.
내가 경험한 것은 단순한 개인적 불운이 아니라, 사회적 권력 구조가 만들어낸 상징적 폭력이었다.


부르디외의 통찰

상징적 폭력의 영향력
첫째, 그것은 은밀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피해자는 스스로 문제라고 여기며 자책하기 쉽다.
둘째, 그것은 집단의 규범에 의해 정당화된다. 따라서 잘못된 힘조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셋째, 그것은 교육, 문화, 언어를 통해 세습되며, 세대를 거쳐 지속된다.

즉, 상징적 폭력은 한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모하는 구조적 폭력이다.


우리에게 남는 질문

나는 어떤 언어와 규범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억압당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혹시 나도 알게 모르게 누군가를 침묵시키는 언어를 쓰고 있지는 않은가?


상징적 폭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은밀함 때문에 가장 강력하다.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억압의 굴레에서 한 걸음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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