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이 진실을 잠식할 때

권력과 언어, 그리고 거짓이 만들어 낸 세계

by stephanette

한나 아렌트와 언어의 타락

나는 어느 순간 이런 경험을 했다.
분명 내가 하지 않은 말인데, 누군가 그것을 나의 말로 꾸며내어 퍼뜨렸다. 처음엔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말은 반복되었고, 사람들은 점점 그것을 사실처럼 받아들였다. 나는 나 자신을 증명할 길을 잃었고, 침묵만이 강요되었다.


아렌트의 통찰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과 여러 글에서, 전체주의가 유지되는 이유 중 하나로 거짓말과 언어의 왜곡을 지적했다. 그녀는 거짓말이 단순히 사실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거짓말은 현실 자체를 대체하고, 사람들이 사고하는 능력을 마비시키는 힘이라고 보았다.


반복된 거짓말은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을 의심하게 만든다. 무엇이 사실인지조차 중요하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진실을 확인하려 하지 않고, 단순히 더 크게, 더 자주 반복되는 언어를 믿게 된다.


언어의 타락이 만드는 폭력

언어는 원래 진실을 드러내고 서로를 이해하게 하는 도구다. 그러나 언어가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면, 그것은 폭력의 형태가 된다.


누군가의 거짓말이 반복될 때, 피해자는 점점 자신의 경험을 의심하게 된다. “정말 내가 잘못 본 걸까?”, “혹시 내가 문제였나?”라는 자책으로 빠진다. 이것이야말로 언어의 타락이 만들어내는 깊은 상처다.


아렌트는 이러한 상황을 단순한 개인적 불운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문제로 보았다. 언어가 진실을 잃으면, 공동체는 합리적 기반을 상실하고, 결국 권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려가게 된다.


거짓말과 전체주의

아렌트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언어가 어떻게 파괴되는지 분석했다. 전체주의는 폭력으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는 거짓말과 왜곡된 담론을 통해 사람들의 사고 자체를 장악한다.


이 구조에서는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진실은 귀찮고, 불편하며, 때로는 위험한 것이 된다. 대신 거짓말은 단순하고 자극적이며 반복 가능하기 때문에 더 쉽게 힘을 얻는다.


저항의 방법 – 말하는 용기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렌트는 거짓말의 반대가 단순히 ‘진실’ 그 자체라고 보지 않았다. 그녀가 강조한 것은 말하는 용기(Parrhesia, 진실을 말할 용기)였다.

언어가 타락할 때, 저항은 침묵이 아니라 증언에서 시작된다. 기록하고, 발화하고, 계속해서 말하는 것. 이것이 거짓말의 반복에 맞서는 길이다. 거짓말은 반복으로 힘을 얻지만, 진실 또한 끊임없는 말하기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에게 남는 질문

나는 언제 거짓말의 반복 속에 갇힌 적이 있었는가?
그때 나는 어떻게 나의 진실을 지켜냈는가?
그리고 지금, 나는 누군가의 언어를 무비판적으로 믿고 있지는 않은가?

거짓말은 현실을 잠식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을 증언하고 언어를 되찾는 순간, 그 타락한 구조에도 균열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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