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하는 잡지에 대해서
*사진 출처: PAPER magazine
대학 때
학교 앞 파스타 집에 가면, 잡지 '페이퍼'가 있었다.
새로 만들어진 잡지라고 판매는 안 한다며 그냥 가져가라고 했었다.
까슬거리는 두툼한 표지의 아름다운 사진들이 담겨있던 잡지
페이퍼를 보기 위해 파스타를 먹으러 가기도 했다.
두꺼운 잡지에서 광고들을 싹 빼버린 그 멋이라니.
대학의 자유로운 공기와
대안적 문화의 냄새가 나는 그 책을 애정했었다.
대학 등굣길은 장장 2시간이 넘게 걸렸다.
당시, 당산 철교 공사로 2호선 지하철 순환 노선은 합정-당산 구간이 끊겼었다. 성수대교 사고와 한강 철교의 안정성 문제들이 대두되던 시기의 일이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신도시로 이주했던 나로서는 등하교 시간에만 거진 5시간이 걸렸다. 언니도 같은 대학을 다니고 있었으니, 둘이 합치면 매일 10시간을 도로 위에서 버리는 셈이었다.
지하철 플랫폼 안에는 작은 가판이 있고, 씨네 21 같은 잡지들을 팔았다.
차를 기다리며 심심풀이로 구입하기 시작했던 씨네 21은 주간지였고, 일주일 내내 늘 한 손에 쥐고 다니면서 모서리가 동그랗게 말릴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할 때까지.
그에 비하면, 페이퍼는 월간지라서 차마 마음대로 접지도 못하고 애지중지 들여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대학에 입학을 하면서 잡지들을 다 섭렵하던 아날로그 식의 접근이 지금으로서는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정보의 양이 극히 부족했다.
금세 다 읽을 수 없으니 아껴 가면서 읽던 그 맛을 대신할 수는 없다.
까슬거리던 페이퍼의 표지
물리적인 물체로 존재하는 페이퍼북을 좋아한다.
책을 거의 메모지로 쓰고 있어서 더 그럴 수도 있다.
색색깔로 책에 문장을 따라 쓰거나 질문을 써 놓는 버릇이 있다.
캘리그래피는 아니지만, 내가 써 놓은 글자들을 다시 보는 것도 좋아한다.
괜스레 꼬리를 휙하니 늘려 쓰던 글자들
잡지 페이퍼는 사진을 시작하게 해 줄 만큼
멋진 사진들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허영심을 가득 채워주던
그리고, 씨네 21은 영화 속으로 다이빙하게 해 주었다.
당시 대학에서 영화 학회를 만들어서
'위험한 독신녀' 같은 영화들을 보고 토론회를 했다.
1일 1 영화를 못 보면 혀에 가시가 돋았다.
사실 1일 1 영화는 너무 적지 않은가.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에 영 집중을 못한다.
그러니, 그다지 자주 보게 되지 않지만
대학 때 브런치라도 있었다면, 매일 영화평을 쓰거나 했을까.
인화해놓은 사진을 뒤적거리다가
갑자기 페이퍼의 엽서가 튀어나와서
어릴 적 추억이 떠올랐다.
그때 잡지들이 내게 열어준 세계는, 지금의 나를 만든 씨앗이었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이미지를 조합하며, 삶을 기록하는 방식은
어쩌면 오래전 파스타집 구석에서 집어든 한 권의 잡지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