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의 얼굴들

다 가졌음에도 여전히 공허한 이유에 대해서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나는 늘 공허했어. 그래서 채워지지 않는 내면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외면하고 싶었지. 그래서 늘 다른 무엇인가에 몰두해 왔어. 퇴근 후의 맥주, 혹은 운동, 아니면 집안에 페인트를 바르거나, 가구를 만들거나, 목공을 하거나,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그러나 종국에는 그 무엇도 점점 더 많은 몰입이 필요할 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어. 그나마 일이 가장 좋았던 걸까. 일 중독으로 몇 년을 살면서 더 많은 이들이 나에게 칭찬과 인정을 건네거나 혹은 질투를 하고 끌어내리려고 하는 것들을 보면서 나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 뭐든 손에 쥐면 잠깐 숨이 트이는 기분이었지만, 손을 놓는 순간 허탈이 되돌아왔어. 그건 잠깐의 도피였고, 도망칠 수 없는 나와의 마주침을 미루는 방식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어.


그렇지, 난 이 기나긴 시간을 견디기가 어려웠어. 계속 잠에 빠져들어서 시간을 순삭 시켜버리고 싶었어. 늘 반복되는 일상을 또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이 지겨움. 그리고 뭔가 본질에 닿지 못하고 그 언저리에서 방황하고 있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거든. 멈추면 나 자신에게 들킬 것 같아서 멈추지 않았어. 멈추는 순간 '나는 충분하지 않다.'는 소리가 너무 커질 거라고 믿었으니까. 그리고 그걸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도 영영 모른 채 미로 속을 헤매는 기분 그 무력감을 느끼고 싶진 않았거든. 어렴풋이 스쳐가는 그 감각은 사실은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데, 나는 그걸 피하려고 다른 것들에 분주하게 몰입을 해나갔어. 내 안의 빈자리를 살짝 덮어주는 식탁보처럼 그 아래에는 식탁의 형체가 어른거리며 드러나게 되어있었어. 그러니, 그런 것들은 진짜 채움이 아니었어. 그냥 빈자리를 잠깐 덮어버리는 임시방편에 불과했지.


사람들과 있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어. 겉으로는 섞여 있지만, 겉도는 대화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은 그들이 알아듣지 못했어. 진짜 기대고 싶은 순간에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은 드물었어. 곁에 있지만, 소통되지 않는 그 감각. 심장은 여전히 닫힌 채로 있었으니까. 희박한 믿음은 친밀함을 욕망하면서도 회피하게 되는 거야. 그러니 그 빈 곳은 성취로 대체하려고 한 거지. 사람이 주지 못하는 것들을, 내가 내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그 성취감으로 채우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했거든. 그게 더 안전하잖아.


목표를 이루어도 만족은 잠시, 더 허기지고 다시 쫓아가. 반복, 또 반복, 결국은 내가 만든 루프 속을 질주하는 기분이야. 그런 반복이 길어지면, 어느새 나는 무엇을 향해 달리는 지도 잊게 되는 거야. 피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 달리는 거지. 그러면 나는 그 목표의 그림자가 되어서 질질 끌려가고 있었던 거야.


모든 것이 다 부서지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어. 그 모든 공허는 내가 나를 만나지 못해서 비롯된 거란 걸. 그리고 그 공허의 한가운데를 뚫고 나가서야 비로소 나를 대면할 준비가 되는 거라는 걸. 그나마 다행이지.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성을 깨달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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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 서서 내면을 지켜보며 영혼의 지도를 그려가는 사람입니다. 글이라는 리추얼을 통해 말이 되지 못한 감정에 이름을 붙이며 길을 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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