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적 명상: 책과 산가지와 카드
*사진 Unsplash
이탈리아를 좋아한다.
거리를 걸으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성당
그 안에 줄지어 서 있는 열주와 개인 기도실들
뇌의 처리 속도를 넘어서는 무수한 성상들과 그림 속 상징
그것들에 나는 마음을 빼앗겼다.
학부 때 교양으로 미학사를 배웠다.
그림보다는 건축에 더 관심이 갔다.
그리고 실물의 부피감으로 직접 보는 건축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한동안 편리함을 이유로 이북리더기를 들고 다녔다.
그러나, 손에 닿는 그 종이의 감촉
펜으로 끄적이는 그 순간의 느낌들을 대신할 수는 없다.
도서관의 책을 잘 읽지 못한다. 메모를 할 곳이 없다.
밑줄을 치고, 모서리를 접고, 별표들을 하는 것은
나의 한 순간을 기록하는 일이다.
지나고 다시 읽는 책은 나의 과거를 확인하는 일이다.
십 대 때, 주역을 처음으로 배웠다.
한학자라고 하기에는 매우 젊은 스승님에게
그분은 산가지를 만들라고 하셨다. 얇은 대나무 산적꽂이 같은 모양으로 동그란 통에 넣어오라고.
그 산가지를 뽑아서 주역 괘를 뽑는다.
아날로그식 방법이다.
간략하게 동전을 던질 수도 있다. 앞면과 뒷면을 음과 양효로 정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동전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말씀을 하셨다.
주역의 본래 방식인 시초법이니 그리 말하셨겠으나,
지금의 나는 이렇게 이해한다.
산가지는 시간과 정성의 상징이다. 한 효를 정하는 데에도 오래 걸린다. 무수한 조작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 자체가 수행이자 명상이다. 단지 점괘를 뽑는 것이 아닌, 괘를 세우는 의식과 과정 그 자체를 가르쳐주고 싶으셨을 거라고.
몸과 손의 감각, 시간의 흐름, 의도와 무의식까지 모두 관여하는
아날로그 식의 방법을 좋아한다.
갑자기 새벽에 타로 카드를 주문했다.
하루도 안되어서 택배가 도착했다.
어릴 적 타로 카드를 선물로 여러 차례 받았다.
나는 타로 리딩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사람들은 나에게 타로를 선물로 주었다.
100장에 가까운 타로 카드 속 상징들을 하나씩 살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수많은 디자인의 타로를 살펴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 이후에는 오라클 카드의 상징에 빠질 수도 있겠다 싶다.
중세의 회화 작품들을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타로 속 상징들에 남아있는 수비학과 영성적 상징, 그리고 사람들이 가진 무의식
한 동안은 심심치 않을 것 같다.
손에 느껴지는 카드의 그 아날로그 감각이 한편으론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