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는 늘 선하게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업이 되어 돌아온다.
*사진: Unsplash
전생의 나는 수도자였다.
인간 세상과는 멀리 떨어져서.
전생의 업은
내면 차원의 상승에 따라 달라진다.
각 차원에는 그 차원에 맞는 카르마가 있다.
그러니, 차원이 달라지면 카르마도 변한다.
현생의 삶은 다른 이와는 전혀 연결되지 못한다.
자기 삶은 자기 카르마의 구현이다.
그러니, 만나는 모든 이들은 카르마의 결과이다.
벌레를 만나는 건
내 전생의 카르마가 벌레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면 차원의 상승을 원한다.
다른 차원으로 가면,
나는 인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전의 모든 카르마는 사라진다.
그러니, 내가 만나는 이들은 나의 카르마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나에게 고통을 주는 이들
행복을 주는 이들
그 모두는 내 업보이다.
내면 차원의 변화를 위해서는
여정을 걸어야 한다.
나는 부모가 없다.
있다 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외로움은 힘으로 변화한다.
고통과 고독은
새벽바람 같은 직감이다.
그것이 변화를 위한 에너지이다.
업을 풀어가는 방법은 그 직감을 따라가는 것이다.
에너지는 모두 다 선한 것으로 풀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모두 다 업이 된다.
그러니, 다른 차원을 가게 되어도
지금 쌓는 업들은 다시 내게 돌아온다.
그러니, 모든 이들에게 선한 에너지를 주면서 살아야 한다.
이 것이 여정을 걸으며 변화한 나의 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