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던 곳들이 사실은 매우 가까운 곳이었다고
여행을 시작하면 늘 아프다.
여독이라고 하자.
그간의 모든 긴장을 다 내려놓으니 당연히 아프다.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막고 있던 그 스위치를 꺼버리니
아픈 건 당연하다.
약을 먹고 아픈가 보다 한다.
새벽에 일어나 견디지 못한 채 조깅을 한다.
평소에도 잘하지 않는 강도로 숙소 주변에서.
여독이야 다들 느끼는 것일 텐데
여행을 와서 아픈 건 참 경험할 때마다 처음처럼 새롭다.
평소에 얼마나 긴장을 하고 사는 건지.
여행지에서의 수많은 감각들로 인해 아프기도 하다.
과한 자극이다.
예민하고 섬세한 성향으로는
사람들이 많은 낯선 곳은 상당히 에너지가 소진된다.
모두 다 내려놓는다.
여행에의 기대까지.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반투명한 방수 바람막이와
숏팬츠를 입고 조깅화를 신고
바다로 나갔다. 비가 많이 온다.
해운대는 비가 와도 조깅을 하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좋다. 다들 비에 젖어서 뛰고 있으니 마음이 편하다.
모르는 곳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걷다 보니
알던 곳들이 사실은 바로 지척이다.
어릴 적 다니던 할매 사우나와 금수복국
팥빙수집과 숙소
해목과 까사노 부산
그 각각을 연결하는 길이 머릿속 지도에서 선명해졌다.
나의 걸음으로 맵의 어둠이 사라지니
거대한 지도가 완성된다.
우연찮게 마주한 지도에 벅차오르는 기분이다.
딱히 하는 건 없다.
어슬렁거리며 걸어 다니다
밥을 먹고
바다를 보고
바다에 들어갔다
커피를 마시고
그 무한 반복이다.
그리고, 그 시간으로 인해 나는
묵었던 감정들을 다 바다에 풀어놓고
길 위에 흩뿌린다.
내일의 일정은 여전히 슬리퍼를 끌고 걸어 다니고
바다에 들어간다.
모래사장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하늘을 보고
모래를 서걱 인다.
그리고 지도를 확장시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