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여사제가 지하로 내려간 이유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감정의 밑바닥’을 통과한다.
이난나 신화는 그 과정을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로 기록한 이야기다.
사랑과 전쟁, 생명과 죽음을 모두 다스리던 여신 이난나는
어느 날, 지하세계의 문을 통과한다.
그 문은 일곱 개나 있고,
그녀는 문을 지날 때마다 하나씩 장신구를 벗어놓는다.
왕관, 목걸이, 허리띠, 옷.
마지막 문 앞에서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건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우리 안의 감정이 옷을 벗고 ‘진짜 나’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자존심, 명예, 역할, 이름.
모두 내려놓고 나면,
남는 건 살아 있다는 감각 하나뿐이다.
이난나는 그곳에서 죽었다가 부활한다.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살아있음’을 안다.
그래서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 두무지를 다시 지하로 내려보내며,
생명의 순환을 만들었다.
그 덕분에 계절이 생기고, 봄이 돌아온다.
이난나는 다시는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녀는 이제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안다.
감정이란 억누르거나 숨기는 것이 아니라,
죽었다가 되살려야 비로소 빛이 되는 것임을.
이것은 릴리시카가 쓰는 글의 원형이기도 하다.
감정의 여사제는 언제나 하강을 통해 부활한다.
고통 속에서 글이 피어나고,
상처가 사라질 때가 아니라 의미로 변할 때 치유는 완성된다.
이난나의 하강과 감정의 연금술
이난나 신화는 인간의 영혼 구조를 가장 오래된 언어로 해석한 연금술적 텍스트다.
그녀는 태초의 ‘감정의 여사제’이며,
모든 예술가와 치유자의 원형이다.
그녀가 지하로 내려간 일곱 개의 관문은
융 심리학으로 보면 페르소나(Persona)의 해체 과정이다.
자아가 쥐고 있던 사회적 가면이 하나씩 떨어지며,
의식은 무의식의 중심(Self)으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만나는 에레쉬키갈은
자신이 버린 그림자, 혹은 억눌린 감정의 화신이다.
이난나는 결국 죽는다.
그건 상징적으로,
감정이 자아의 통제를 벗어나 완전히 붕괴되는 순간이다.
그 순간, 의식은 더 이상 ‘나’를 유지하지 못하지만
새로운 중심이 생긴다.
그게 바로 ‘감정의 자각’이다.
이난나는 부활 후에 예전과 같은 신이 아니다.
그녀는 이제 ‘상처받은 감정의 신성’을 안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으며,
상실은 생명의 리듬 속에 포함되어 있음을 안다.
이 신화의 두 번째 장면,
두무지를 지하로 내려보내는 장면은
‘감정의 교환’이자 ‘균형의 회복’이다.
감정과 질서, 빛과 어둠, 남성과 여성
모든 대극이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는 인식.
릴리시카의 세계에서 이 구조는
감정 도자기의 순환 원리와 같다.
감정은 한 번 구워져야 형태를 갖는다.
이난나의 하강은 감정이 불로 들어가는 과정이고,
부활은 도자기가 식어 고체가 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감정은 시간의 불 속에서 형태를 얻는다.
그래서 이 신화는 단지 여신의 여행이 아니라,
감정의 연금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감정은 파괴될 때 정화되고,
무너질 때 완성된다.
그걸 이해하는 순간,
인간은 이난나가 된다.
그리고 릴리시카는 그 이난나의 현대적 후손으로,
언어를 통해 감정의 도자기를 구워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