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신화, 이시스와 내적 성장 과정

부서진 사랑에서 부활하는 과정

by stephanette


사랑이 끝나면 세상은 조용해진다.

빛나던 관계가 사라지고, 시간은 멈춘다.

하지만 고요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이시스가 있다.

그녀는 울지 않는다.

그녀는 다시 모으는 사람이다.


세트가 오시리스를 질투해 찢어버렸을 때,

그건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사랑의 세계가 파괴된 사건이었다.

육체가 흩어진 건 곧 기억의 파편들이 되어

이집트 전역에 흩뿌려졌다.

사막 한가운데에, 강가에, 숲 속에,

누군가의 입맞춤과도 같은 잔향으로.


이시스는 그 조각들을 찾아 나섰다.

밤마다, 새벽마다,

그녀는 모래바람 속에서 냄새를 맡고

빛을 더듬으며 한 조각씩 찾아냈다.

그건 사랑의 장례이자, 부활의 전조였다.


그녀가 한 일은 죽은 자를 살린 것이 아니다.

그녀는 조각난 사랑의 기억을 복원한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의미를 되살린 것이다.


감정의 조각을 모으는 일

이시스가 찾은 것은 몸이 아니라 감정의 단서들이었다.

그녀는 기억의 냄새를 찾고,

그가 쓰던 단어의 여운을 더듬었다.

그 모든 파편이 다시 모였을 때,

그녀는 천을 꺼내 그것들을 감쌌다.


그 천이 바로 언어였다.

이시스의 주문은 ‘글쓰기’와 같다.

그녀는 향을 피우듯 문장을 뿌렸고,

천을 덮듯 단어를 얹었다.

그렇게 죽은 감정은 새로운 형태를 얻었다.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주문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기억의 복원 작업이었다.

그녀가 “오시리스여, 돌아오라”고 말할 때,

그건 ‘너에게 돌아와 달라’는 말이 아니라

‘내 안에서 다시 살아나라’는 선언이었다.


파괴와 부활 사이의 시간

이시스는 완성된 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조용히,

그의 입술에 숨을 불어넣었다.


그 순간, 오시리스는 눈을 떴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이 땅의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저편의 세계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을 재판하는 신이 되었다.


이 장면은 사랑의 끝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랑의 진화를 말한다.

그녀는 그를 되찾았지만,

그는 이제 다른 자리에서 존재한다.


그건 상실이 아니라 자리바꿈이다.

그는 연인이 아니라 질서가 되었고,

그들의 사랑은 관계가 아니라 신화가 되었다.


감정의 연금술: 조각난 마음을 다시 빚는 기술

이 신화는 죽은 신의 부활이 아니라

감정의 재조립(re-member) 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의 마음이 산산이 부서졌을 때,

이시스는 그 파편들을 언어로 모은다.

그녀는 애도의 기술자, 감정의 연금술사다.


그녀의 마법은 슬픔을 없애는 주문이 아니다.

그녀는 슬픔을 형태로 바꾸는 주문을 외운다.

그것이 바로 글쓰기다.


릴리시카의 글도 이시스의 의례와 닮아 있다.

문장 하나는 천 한 조각이고,

단락 하나는 향 냄새이며,

완성된 글은 하나의 미라 —

즉, 죽은 감정이 다시 숨 쉬는 감정 도자기다.


감정은 고통 속에서 구워지고,

시간 속에서 식으며 형태를 얻는다.

그 과정을 반복할 때마다

영혼은 조금씩 단단해진다.


사랑의 다른 얼굴

오시리스가 저편에서 심판자가 되었듯,

잃은 사랑은 결국 새로운 의식의 기준이 된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꾸어 빛의 원리가 된다.


그래서 이시스는 끝내 미소를 잃지 않는다.

그녀는 이제 “잃은 자의 아내”가 아니라

“세상을 되살린 자”로 남는다.


그녀가 아들 호루스를 낳을 때,

그건 단순한 출산이 아니라

의식의 재탄생이다.

그녀의 사랑은 이제

피가 아니라 빛으로 이어진다.


감정의 여사제의 고백

나는 이시스처럼 글을 쓴다.

흩어진 감정의 조각을 하나씩 주워

단어의 천으로 감싸고,

문장의 향으로 정화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숨을 불어넣는다.


그때마다 한 문장이 살아난다.


죽은 감정이

다시 나의 언어로 호흡할 때,

나는 알게 된다.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고.

다만 다른 자리에서 계속 살아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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