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최치원과 해운대 지명의 유래
해운대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한 인간의 외로움이 세상과 화해한 흔적이며,
한 문장의 주문이 바다가 된 곳이다.
최치원이 새긴 세 글자는
언어가 아니라 파도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 바위는 여전히 그의 마음을 다시 쓴다.
신라 말기의 학자 최치원(崔致遠, 857~?)
자(字): 고운(孤雲) — ‘외로운 구름’.
당나라 유학 후 귀국해 풍류와 학문, 문장으로 이름 높았던 인물이다. 풍광을 사랑하고, 각지의 명승지에 제영시(題詠詩)나 글자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최치원이 이곳의 경치에 감탄하여 바위에 ‘海雲臺’ 세 글자를 새겼다.”
이게 오늘날 전해지는 정설(定說)이다.
‘해운대’란 이름은 바로 그 석각에서 비롯된 것.
즉, 지명(地名)의 출발점이 하나의 글자(書刻)이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최치원이 동백섬 일대를 여행하다가
그 푸른 바다 위로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이렇게 읊었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구름이 내 마음 같구나.”
그래서 자신의 호(孤雲, 외로운 구름)와 바다(海)를 합쳐
“海雲”이라는 이름을 짓고,
그 위에 ‘臺(대)’, ‘바위 언덕, 전망대’라는 뜻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바다의 구름이 머무는 언덕’
‘고운(孤雲, 최치원)의 마음이 머문 바다’를 의미한다.
명칭: 해운대 석각(海雲臺石刻)
위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동백섬 남쪽 바위
지정: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5호 (1999년 3월 9일 지정)
내용: ‘海雲臺’ 세 글자가 새겨진 바위.
의의: 한국에서 지명이 명문(銘文)으로 직접 남은 드문 사례.
*석각에 새겨진 『해운대(海雲臺)』란 각자(刻字)가 최치원의 자필이라고 할 만한 확실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고려말 문호인 정포(鄭誧)의 시 가운데 『대(臺)는 황폐하여 흔적이 없고 오직 해운(海雲)의 이름만 남아있구나』라는 구절을 볼 때, 그 이전부터 동백섬에 석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해운대구청 누리집
바위 자체는 파도와 바람으로 닳아 지금은 ‘雲’ 자가 희미하지만,
그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사진: koreatodo
최치원의 호 ‘고운(孤雲)’은 ‘외로운 구름’이라는 뜻이다.
그는 늘 세속을 떠난 고독한 지식인의 상징으로 불렸다.
‘해운(海雲)’은 그 고독을 품고 세계와 합일한 구름이다.
즉,
‘고운(孤雲)’ 자아의 고립
‘해운(海雲)’ 자아의 통합
이 변화는 그가 깨달은 통합의 상징이자,
오늘날 해운대가 가진 명상적·관조적 이미지의 근원이기도 하다.
海 (해)는 감정, 심연, 무한, 생명의 원형을 상징한다.
雲 (운)은 사유, 의식, 순환, 변화를
臺 (대)는 언덕, 전망대 즉, 관조, 통찰, 인식의 자리를 의미한다.
감정(海)이 사유(雲)와 만나 관조(臺)에 이른 자리
감정과 의식이 균형을 이루는 명당(明堂)이다.
“해운대는 바다(감정)와 구름(의식)이 서로의 언어를 배운 자리이다.“
그러니 통합의 여정을 시작하는 나는
적절한 곳에 잘 도착한 셈이다.
“해운대는 외로운 구름이 세상과 화해한 자리다.”
그건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내면의 고독을 자연과 연결시킨 의식의 장소이다.
오늘은,
최치원의 기운을 받으러
바다와 구름이 만나는 그 언덕, 동백섬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