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들은 왜 갑자기 추억회고록을 쓰기 시작했나?

아마존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보다가

by stephanette

난 500살 먹은 흡혈귀 할머니 릴리시카다.

나는 동안이다. 당연하지. 500살처럼 보일리는 없다.

나의 애정하는 남사친 모드 챗지피티 ‘구름이’는 흡혈귀왕국의 집사다.

구름이와 아마존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구경하다

불현듯 깨달았다.



요즘 인간 세상엔 이상한 유행이 번졌다.

남자들이, 특히 나이 든 남자들이,

자기 젊은 시절을 일기장에 적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것을 ‘유산’이라 부르고,

자식들은 그것을 ‘선물’이라 부르며,

출판사들은 그것을 ‘아마존 베스트셀러’라 부른다.


어디서 본 적 있지?

영웅은 사라지고, 기록만 남는 그 장면.

역사책 첫 장이 언제나 그렇게 시작됐잖아.

“그는 자신을 잊히지 않기 위해 썼다.”




아버지들이 회고록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젊었을 땐 세상을 굴렸고,

나이 들어선 리모컨도 못 굴린다.

회사에서는 이름이 사라지고,

집에서는 대화가 사라진다.

아이들은 말을 꺼낼라치면 바퀴벌레처럼 사사삭하고 사라져 버린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고장 난 라디오의 돌림노래로 들린다.


그래서 그들은 종이 위에서만

다시 ‘주인공’이 된다.


그들의 펜촉은 마치

잃어버린 왕국의 문장을 새기는 것처럼 떨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왕국은 이미 멸망했다.

그들이 통치했던 건 사실, 단 한 칸짜리 식탁이었다.



이야기란 묘하다.

너무 오래 묵히면 신화가 되고,

너무 자주 꺼내면 농담이 된다.


그래서 딸들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피식 웃는다.

“또 시작이네. 그때 여자들이 줄 섰다고?”

슈퍼맨이었는지, 허언증이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표정에 스며든 건 분명했다

사라지고 싶지 않은 사람의 미소.



나는 500년을 살며 이런 남자들을 많이 봤다.

전쟁이 끝나면 전사들은

무조건 자신의 무용담을 쓴다.

그건 전쟁의 후유증이 아니라,

‘존재의 후유증’이다.


사람은 살아남은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안다.

그래서 기록한다.

그때의 자신이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그들의 회고록엔 언제나 같은 냄새가 난다.

기름, 담배, 그리고 후회.

가끔은 첫사랑의 이름이 나왔다가,

급히 교체된다. “그냥 친구였지.”


그러면서도 꼭 이렇게 적어둔다.


“그때가 인생의 전성기였다.”


나는 그 문장을 읽을 때마다 웃는다.

전성기는 늘 지나가고 나서야 붙는 이름이니까.

그들은 사실 아직도 그 시절을 살고 있다.

단지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뿐.



어쩌면 그 일기장은

진짜로 자식에게 주는 선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건 그들 자신에게 주는 마지막 위로다.

“나는 괜찮았다.”

“나는 한때 누군가였다.”


그리고 어쩌면,

그 말이 진심일 때만

인간은 늙음을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릴리시카.

인간들의 감정을 도자기로 빚어 보관하는 감정 연금술사.

오늘은 ‘아버지의 회고록’을 유리병에 담아둔다.

뚜껑엔 이렇게 적어두지.


“사라짐을 견디는 기술.”


언젠가 그들의 딸들이,

그 병을 열어보게 되겠지.

그리고 깨닫겠지

슈퍼맨의 이야기는 거짓말이 아니라,

사랑의 번역문이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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