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목적

마음의 세간살이들은 호텔방처럼 리셋된다.

by stephanette

이상하게도 삶의 통과의례 시기마다 여행을 갔다.

열흘 이상의 목적 없는 혹은 의도하지 않은 우연찮은 여행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첫 직장을 구하기 전 - 하와이

긴 요양을 하기 전 -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전 - 부산 송정

그리고 지금 - 부산 해운대


지금은 아마 중년의 위기 그런 시기 같다.

딱히 시간과 돈이 허락되어서는 아니었다.

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가장 취약하고 열악할 때였으니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절박한 심정에

우연히라도 기회가 오면 “YES!”라고 하고 떠난 것이다.


그 전의 삶에서 나오는 마음의 세간살이들을 정리하다 보면

어찌나 켜켜이 쌓여서 기억에도 없는 것들이 나오는지.

그것들을 마음속 집 마당에 꺼내놓고 햇빛 아래 펼쳐놓는다.

어떤 것들은 생각보다 빛바랬고

어떤 것들은 부서져서

다시 수리를 한다 해도 제기능을 하긴 글렀다.

어떤 것들은 무엇을 구입한 건지도 모를 꼬깃한 영수증 조각과 잡동사니 먼지들이다.


호텔방은 아무리 많은 것들을 제멋대로 쌓아두어도

나갔다가 다시 문을 열면 리셋된다.

나의 마음도

그 호텔에서의 여행을 닮아

마당에 꺼내놓은 자잘한 조각들이 어느새 치워지고 리셋된다.

꺼내어서 햇볕에 잘 말리는 것만으로도.

호텔 방처럼 편안하고 안락하고 그 어느 하나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라니. 일상생활을 위한 세간 하나 없는 곳,

그러니까 다시 생각해 보면 가사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다.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생각과 잡다한 번뇌들은 그렇게 호텔 세탁실로 보내버린다. 더러웠던 수건과 이불들은 처음 포장을 뜯을 때의 그것처럼 뽀얗게 태어나서 착착 개어지고 다시 호텔방으로 배달이 된다.


나는 모래밭을 밟던 발을 탁탁 털고

샌들에 묻은 모래를 물로 말갛게 씻어낸다.

막 배달된 그 햇살냄새나는 사박사박한 이불속에 파묻혀

미래의 나를 기억해 낸다.

하나의 단어라도 좋다.

하나의 질문이라도 무방하다.


“넌 어쩔 셈이야?”

“글쎄 난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비선형적 우주의 수많은 가능성의 나를 찾아간다.

정답은 필요 없다.


나의 그 질문은 주문이 되어서

그 수많은 나의 형태 중에

가장 지금의 나에게 걸맞은 내가

나에게로 저벅저벅 걸어올 것이라는 건 안다.


여행지에서의

마음의 집을 정리하고

햇볕을 쬐고

늘어놓고 말린 그 덕분에

나의 마법은 힘을 얻는다.


이것이 나의 여행의 목적이다.


https://youtu.be/Qo3ZHHmXeSI?si=NIbvAPyR_Zq_5WJ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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