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방정리를 하다가 구석에서 먼지 쌓인 채 발견되었다.
*사진: Unsplash
겨울로 넘어가는 주말에는 대청소를 한다.
마음의 방정리를 하다가
구석에서 먼지가 소복하게 쌓인 노트를 발견했다.
'데스노트'
다들 알다시피 여기에 이름을 쓰면 그는 죽는다.
'아하하하하하'
생각만 해도 통쾌하다.
그 통쾌함에 마녀처럼 웃고 말았다.
그리고 사뭇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누구 이름을 쓸까?
나를 괴롭힌 학창 시절 남자 짝꿍
책상 위에 선을 그어 놓고
"이건 38선이야. 넘어오면 바로 전쟁이야!"
라고 하던 그는
가끔 내 팔꿈치를 밀치거나
"메롱" 혀를 내밀며 놀리거나 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생일대의 사건이 있었다.
난 아직도 그때의 그 흥분과 절망감을 잊지 못한다.
반 아이들이 모여서 "필통 싸움"을 하고 있었다.
"지우개 싸움" 같은 딱지치기의 변형 버전이다.
필통으로 다른 필통을 뒤집으면 이기는 게임이었다.
문제의 발단은 이기는 사람이 필통을 갖는다는 룰을 새로 만들어서였다.
당시 나의 짝꿍이 계속 승리하고 있었다.
평소에 조용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없던 남학생이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는 그 경기에 참여를 했다.
나의 필통은 매가리 없이 뒤집혔다.
그리고, 빌려온 친구의 필통도 짝꿍의 강력한 스킬에 속절없이 뒤집혀버렸다.
분명 그 안에 연필들이 몇 개 들어있지 않아서였다.
학급에서 가장 무거운 필통을 들고 다니는 친구에게 필통을 빌렸다.
"내가 꼭 이겨서 내 필통도 되찾겠어!"
나는 다짐을 하고 경기를 했다.
나는 아직도 그 흥분을 기억한다.
그리고 거기서 절대 멈출 수 없었던 그 고양감도.
확률이나 결과 예측을 다 알고 있었음에도 그 작은 바람은 나의 욕망을 부채질하여 도무지 그만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때, 나는 깨달았다. 소설에 나오는 전재산을 노름으로 탕진하고 야반도주를 하는 그런 사람들이 왜 그런 결정을 했었는지를.
한치의 흔들림도 없던 짝꿍과 나의 대결을
반의 모든 친구들이 다 모여서 구경했다. 그 상황은 나의 감정에 폭풍우를 몰아치게 했다.
미칠듯한 흥분과 불안감 그 조마조마한 감정들은 손바닥을 축축하게 만들었다.
필통은 몇 번의 엎치락 뒤치락 끝에 뒤집혔다.
"와 아아아 아!!"
그 경기는 그렇게 남학생의 승리로 끝났다.
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그날 생생하게 느꼈다.
너무 화가 난 나는 눈물도 나지 않은 채 그 남학생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밀려드는 후회와 절망감에 나는 손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순간, 그 남학생이 입을 열었다.
모두가 그를 바라보았다.
"에잇, 뭘 가져. 다들 자기 필통들 챙겨."
그 순간 나는 분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울고 말았다.
"하앙~"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손에서 진땀이 난다.
어쩌면 그래서 도박이나 게임 같은 것을 아예 안 하는 건지도 모르니 좋은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살면서 그런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떠올리다가
최근에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이들을 떠올리다가
생생한 복수의 순간을 그려보다가
결국은
데스노트를 덮고 만다.
그래서 먼지가 쌓인 채 있었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