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붙잡는 미련은, 생명력을 거부한다.

달도 없는 삭의 밤, 불빛 하나 없는 숲 속의 검은 오두막 속 아이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근원적인 생명력

최근 나의 화두이다.


어째서 사람은 고통을 놓지 못하는 걸까?

그건 쾌락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감정에 미련이 절절이 흐를 리 없지 않을까.


그 단계를 넘어선 이들도 있다.


쏘울메이트에게 말했다.

"좋아하는 건 말하면 안 되는 거래."

"그게 뭐야. 언제까지 안 할 건데? 사귈 때까지? 결혼할 때까지? 애 낳고 죽을 때까지?"

그러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약간 눈살을 찌푸리며

"그런 사람도 있는 거겠지."

"그래?"

그랬더니 어릴 적 이야기를 꺼내서 긴긴 이야기를 한다.

언제나 질문에는 긴 이야기로 답한다.


좋아하는 것도

고통스러운 것도

같은 것이다.

질척이는 흙탕물은 잘 씻기지 않는다.


죽음과 삶 사이

자기 부정과 자각 사이에 멈춰있는

어두운 밤 깜깜한 오두막 속에

스스로 갇혀 있는

어린아이와도 같다.


그러니,

고통에 대한 미련은

결국 삶을 멈추게 한다.

그건, 근원적인 생명력에서 멀어지는 일이다.


밖으로 나가면 눈이 부시고,

안에 있으면 고요하지만 숨 막히는

그 경계에 멈춘 채

성장하지 못한 채 생존만 하는 자아.


죽음을 넘어설 때

딱 그 순간에 멈춰서

그저 그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건 죽은 것도 살아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감정이 멈춰 있는 상태

정지된 생명의 상태이다.


그건 질병도 성격도 아니다.

그 안에 영혼은 정지 버튼을 누르고

그 속에 육체는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


빛을 들이지 않기 위해

보다 더 두터운 방어기제를 세운다.

공격적 말투, 왜곡과 망상, 현실 부정 같은 것들.

마치 외눈의 독수리 부하들처럼

검은 숲 속 불빛 하나 없는 오두막의 주변을 지킨다.


카르마는 그 문을 두드렸다.

그는 그 어둠 속에서 눈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이 넘은 내 거야."

그의 에고는 그를 놓아줄 리 없다.

에고가 죽고 나면 자기(self)를 대면하게 된다.

그러니, 강력한 에고의 자리에서

그의 자기(self)는 존재감이 없다.

에고는 죽을 생각이 없다.

에고는

자신의 고통이 빼앗길까 봐 두려워서 방어를 하는 것이다.


어둠 밖의 빛을 받아들인 이들은

그 아이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그 아이를 오두막에서 꺼내는 일은

절대 다른 이들이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카르마는 이미 문을 두드렸고,

그가 나올지 말지는 그의 자유의지가 결정한다.


다음 생으로 넘겨도 별 상관은 없다.

그 거대한 카르마를 맞서라고 말하기엔

그 고통은 너무나 크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미 수백 번의 생에서 넘기고 넘겨왔던 카르마는

다시 문을 두드린다.



근원적 생명력을 정지시킨 것은
고통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다.
카르마는 계속 우리의 문을 두드린다.
우리가 나왔던 그 영원한 생명력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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