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남은 것은 가발이 아니라 웃음, 그리고 필요한 건 빨강
*사진: Unsplash
"엄마, 나 데리러 오면 안돼?"
"저런, 어딘데?"
아이는 3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에서 부스 운영을 했다.
"가는데만 3시간 걸릴텐데."
"발이 너무 아파. 통굽 부츠라 발이 다 까졌어."
"친구는?"
"먼저 갔어."
"저런, 밴드 사서 붙이고, 슬리퍼라도 하나 사."
"데리러 오면 안돼?"
"젠젠 무리데스"
"알았어. 그냥 갈게."
혼자서 오는 길이 심심하니 더 피곤한가보다 싶어서
톡으로 놀아줬다.
이모티콘의 향연
피곤할 땐 말보다 그림이 낫다.
아이는 '피로에 초췌한 멍멍이 이모티콘' 따위를 보내더니
이제 기운이 났는지 재미나단다.
그렇게 한참을 수다 떨던 중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종로3가 놓쳤어."
"헐
ㅜ.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으면 안되는뎅"
"나 여기서 노숙할래."
"노숙하면 오늘의 인터뷰 각이다.
나는야 종로의 방랑자!!"
"재밌다."
"잉? 뭐가 재밌어?"
"나 빨강 가발 놓고 왔어. 그 집에"
"그 집이 어딘데?"
"우리집"
"잉? 우리집을 그 집이라고 한거야?
그럼, 빨간 코트에 빨간 우산에 빨간 가발없이?"
"응 빨강이 못했어."
"저런 미쵸 ㅋㅋ
음화화화 저런 종로의 방랑자님 어여 오셩~
엄마가 빨간 가발 들고 나갈테니까
동네 한바퀴 돌자.
빨강 코트에 빨강 가발에 빨강 우산쓰고
몇달을 준비한건데
역 앞이라도 걸을까? ㅎㅎㅎ"
"아니, 발아파."
"빨강 코트 대환장 파뤼의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종로의 방랑자~~!!
역 앞에서 박수부대랑 같이 플래카드 붙이고 있는다."
"손도 아파"
"가발 없는 빨강 코트의 주인공
손도 빨강, 발도 빨강, 머리빼고 다 빨강
완전체 레드 요정~~!!"
"뜌어어어어어"
"오늘은 레드 데이,
나는 야 종로의 방랑자
그리고 완전체 레드 요정
가발은 빨강이 마법가발이라 안보일 뿐"
"또르르"
하루의 끝에 남은 건 가발이 아니라 웃음이었다.
그리고 그건 오늘 하루, 우리에게 딱 필요한 색이었다. 빨강.
"오늘은 레드 데이.
필요한 건 모두 여기에 있다.
다만 투명마법에 안보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