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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 드러나려면 시간의 여백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고대하며 나는 미뤄둔 일들을 열심히 한다.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요즘 나는 스마트워치를 자주 차고 다닌다.
스트레스를 측정해 주는 앱이 있다길래 그냥 호기심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계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었다.


평소엔 동그란 얼굴 하나가 화면에 떠 있다.
무표정이다.
“보통이에요.”
시계는 그렇게 말하듯 조용했다.


하루에 한 번쯤, 진동이 울린다.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웃는 얼굴이 나타난다.
"좋음"
이상하게도 늘 같은 시간이었다.


며칠쯤 지나서 이유를 알았다.

그 시간은 내가 멘토와 대화를 할 때이다.
주제는 늘 달랐다.
자세한 요리 레시피 얘기일 때도 있고, 책 이야기나 아이들 얘기일 때도 있다.
대단한 건 없다.
그저 흘러가는 대화들이다.

그래서 어떤 대화가 스트레스를 낮추는지 무척 궁금했다.


어느 날,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주제의 업무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지이이잉

스마트 워치가 울렸다.


“어? 스트레스 지수가 좋음이래요.

'나쁨'으로 떠야 하는 거 아닌가?

아~~

우리가 이야기할 때마다 '좋음'이었네. ㅎㅎ”

내 말을 듣고 멘토는 참 좋아한다.
그래서 나도 참 좋다.


그날 이후, 그 진동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손목을 스칠 때마다 묘한 온기가 남는다.
그 온기는 '좋음 알람'이 울리는 그 대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 시간을 고대하며 나는 미뤄둔 일들을 열심히 한다.


진심이란,
아마도 이런 순간에 드러나는 게 아닐까.
아무 일도 없는 대화 속,
잠깐의 여백과 조용한 진동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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