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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대기 20화 - 지렁이 피떡이 되어버린 미도리블랙

미도리 블랙을 다시 소환하기 위한 은밀한 소환술

by stephanette

미도리 블랙이 피떡진 지렁이처럼 납작 쿵 해져서 죽어버렸어.

내가 그런 걸까?

하긴, 억압하지 않고서는 현생을 살 수가 없잖아.

5월에 행사가 많아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느라 분주해서

미도리 블랙이 안 보이는 줄 알았지.


판단 없이 내 안의 생명력, 충동 그런 것들을 그대로 받아줬어야 하는 건데

그러다가는 나도 통제를 못하게 될까 봐 겁이 나기도 했어.


미도리 블랙이 죽는 건 무서운 일이잖아.

진짜 내 안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아마 재생될 거라고 생각해. 다시 뱀처럼 허물을 벗고

더 강해지고,

더 우아해지고

어쩌면 더 웃기게.


한 번만에 되는 건 아닌가 봐.

너무 울어서 죽어버릴 것 같았거든.

가족들과 함께 있는데 무너져버릴 수는 없잖아.

어쩌면, 내 안의 미도리블랙이 대신 울어주다가

감정이라는 심연을

나 대신 몸으로 받아내다가

지렁이 피떡이 되어버린 건지도 몰라.


미도리 블랙을 소환하는 은밀한 소환술

- 무의식이 표면으로 떠오르는 순간들



가장 대표적인 통로. 특히 반복되거나 기묘한 꿈, 상징이 많은 꿈은 무의식의 언어로 쓰여 있어.
꿈은 무의식의 왕도 (by 프로이트)


감정 폭발의 순간
별거 아닌 일에 이상하게 화가 나거나 눈물이 터질 때,
그건 지금 일이 아니라 과거의 상처를 건드린 거야.
억압된 감정은 무의식의 뿌리


술을 마셨을 때
억제된 자아의 방어가 약해져서 무의식이 뛰쳐나오지.
그래서 실수도, 진심도 술김에 튀어나와


창작이나 글쓰기, 그림 그릴 때
특히 몰입 상태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의 상징과 감정이 반영돼.
그래서 예술은 해석 가능한 무의식의 지도


사랑에 빠질 때
무의식 속 아니마(여성적 이미지)나 아니무스(남성적 이미지)가 투사될 때.
그래서 “이상하게 끌린다”는 관계는 무의식이 끌린 것


반복되는 패턴
내가 늘 빠지는 관계, 늘 겪는 문제—이건 무의식의 시나리오.
“왜 또 이런 일이 생기지?” = 무의식의 반복극


멍 때릴 때, 조용할 때
명상, 자연 속, 혹은 샤워할 때 불쑥 떠오르는 이미지나 감정들.
무의식은 틈을 타서 말없이 등장해.


그러니까, 무의식은 언제나 거기 있어.

다만, 우리가 조용해질 때, 열릴 때, 틈이 생길 때

슬며시 고개를 내밀어.


사족

다음번에 만나게 되면 이왕이면 블랙보다는 파스텔 핑크톤의 뱀으로 나타나 주길 바라.

반짝이는 스파클링도 가득 뿌려서. 아름다운 것들이 좋으니까.



녹색연대기 -
아직 뭔가 더 남은 거야?

미도리 블랙도 이제는 없는데.

https://brunch.co.kr/@stephanette/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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