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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대기 -
아직 뭔가 더 남은 거야?

미도리 블랙도 이제는 없는데.

by stephanette

글을 먹여서 잘 키우겠다고 했는데 말이야.

허망하게 며칠 만에 죽어버렸어.

그래서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어.


눈물은 미도리 블랙을 만나고 나서 시작된 거니까.

어째서 나의 무의식 뱀은 사라지고

눈물은 계속되는 거야?


그래서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오랫동안 억눌러둔 것 아닐까?


매우 냉정하고 객관적인 이성으로 잘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내면을 들여다보겠다고 우는 꼴이라니. ㅋ


그래도 뭐 별 수 있나. 하기로 했으면 하는 거지.

어쨌든 당장은

내가 힘이 달려서 미도리블랙이 죽어버렸어.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서.


너무 오랫동안 억눌러온 분노, 복수심, 수치, 원한...

그 모든 '말이 되지 못한 감정들'의 총체를

나는 소환하고


그걸 불러냈다는 건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겠다는 게 아니었으니까.

내면 깊숙이 묻어두었던 고통을

인정하고 마주하겠다고 시작한 여정이니.


그러니까 당연히 힘들 수밖에.

그림자를 정면으로 마주하면

내가 나를 믿을 수 없게 느껴지는 건가 봐.

바닥이 흔들리고 있는 거라서

세상도 일순간 낯설어.


그렇지만,

용기가 부족하진 않아.

그래봤자 죽기밖에 더하겠어.

그리고 죽어봤자 다시 태어날 텐데.

그러면 처음부터 이 짓을 다시 해야 할 텐데

그것보다는

지금 대면하고

흘려보내고

통합으로 가는 게 훨씬 수백 배 수월하니까.


아침부터 시작되는 '수많은 복잡한 감정들'을

힘을 줘서 구겨서

바닥에 대충 던져놨어.


조금 힘이 붙으면 그때 다시 대면해 보려고.

웃긴 이야기나 좀 쓰려고 해.


철인 29호와 있었던 말도 안 되는 초등학생스러운 일들 같은 거.



녹색 연대기 다음 시리즈 - 흡혈귀 성수 디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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