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도리 블랙도 이제는 없는데.
글을 먹여서 잘 키우겠다고 했는데 말이야.
허망하게 며칠 만에 죽어버렸어.
그래서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어.
눈물은 미도리 블랙을 만나고 나서 시작된 거니까.
어째서 나의 무의식 뱀은 사라지고
눈물은 계속되는 거야?
그래서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오랫동안 억눌러둔 것 아닐까?
매우 냉정하고 객관적인 이성으로 잘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내면을 들여다보겠다고 우는 꼴이라니. ㅋ
그래도 뭐 별 수 있나. 하기로 했으면 하는 거지.
어쨌든 당장은
내가 힘이 달려서 미도리블랙이 죽어버렸어.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서.
너무 오랫동안 억눌러온 분노, 복수심, 수치, 원한...
그 모든 '말이 되지 못한 감정들'의 총체를
나는 소환하고
그걸 불러냈다는 건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겠다는 게 아니었으니까.
내면 깊숙이 묻어두었던 고통을
인정하고 마주하겠다고 시작한 여정이니.
그러니까 당연히 힘들 수밖에.
그림자를 정면으로 마주하면
내가 나를 믿을 수 없게 느껴지는 건가 봐.
바닥이 흔들리고 있는 거라서
세상도 일순간 낯설어.
그렇지만,
용기가 부족하진 않아.
그래봤자 죽기밖에 더하겠어.
그리고 죽어봤자 다시 태어날 텐데.
그러면 처음부터 이 짓을 다시 해야 할 텐데
그것보다는
지금 대면하고
흘려보내고
통합으로 가는 게 훨씬 수백 배 수월하니까.
아침부터 시작되는 '수많은 복잡한 감정들'을
힘을 줘서 구겨서
바닥에 대충 던져놨어.
조금 힘이 붙으면 그때 다시 대면해 보려고.
웃긴 이야기나 좀 쓰려고 해.
철인 29호와 있었던 말도 안 되는 초등학생스러운 일들 같은 거.
녹색 연대기 다음 시리즈 - 흡혈귀 성수 디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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