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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만인가 무기력

몰입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늘 온오프 스위치라도 필요했는데.

by stephanette

새벽 4시 언저리에 일어나서

루틴대로 정확하게 지켜지는 일상이


십 년 만인가

깨져버리고

무기력.

이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게 이런 거였구나.

생각도 못해봤네.


너무 심하게 일 중독이라

밤새 수많은 이들을 코칭하고

새벽에 일을 하고

투잡, 쓰리잡을 하느라 생각할 시간조차 없었는데

사실 몰입에서 잘 빠져나오지를 못해서

잠이 안 왔었어.

늘 약간 하이 상태라서

하는 일이 인공지능이나 과학 쪽의 그런 것들이라

'감정'에 대한 건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있었거든.

태블릿 만한 크기의 온오프 스위치를 사고 싶었어.

'오프'를 누르면

몰입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면 해서.

그런 상태로 십 년 정도 살아왔어.

일은 너무 재미나지.

누가 시켜서 했으면 그렇게까지 하지 못했겠지.

지금은 그냥 놀고 있어.

본업만 하는 정도.

그래서 재미가 하나도 없어.

그래도 무기력하진 않았거든.

소소하게 살면 되는 거잖아.

재미 좀 없으면 어때

삶에 의미 좀 없으면 어때.

재미나던 일을 내려놓으니까

답답한 마음이 점점 더 커지고 있어.


그래서 심리학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랬는데

이놈의 넘치는 에너지

온라인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이 주 정도 되었나.

그동안 내가 업로드 한 글이 1000개가 넘더라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하긴 해.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 걸까?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해서 미도리 블랙과 동거하기로 한 건데

내가 에너지가 달려서 죽여버렸어.

진짜 무의식이라는 건

어마무지한 힘을 갖고 있다는 건 확실한가 봐.

그걸 잘 다룰 수 있으면 좋겠어.

말 타기도 못하면서 야생마 길들이기를 하겠다고 다짐 중인 것만 같네.


뭘 해야 할지는 알아.

1. 명상

2. '그라운딩' 혹은 '어씽' 그게 안되면 자연을 가까이라도

3. 좋은 것 먹기

4. 좋은 생각하기

5. 운동


사실 이건 그냥 디폴트값으로 해야 하는 것들이고

가장 중요한 건,

생각의 전환


1. 페이스를 일부러 늦추는 연습

글쓰기 - 응시 - 되돌아보기

2. 미도리 블랙의 그림자를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무의식을 억제하지 말고 재배치하기

3. 생산성의 신화를 내려놓기

무기력함의 의미를 '존재의 회복을 위한 고요'로 받아들이기


내가 세상에서 제일 못하는 게 그냥 쉬는 건데.

할 수 없지.

'야생마'와 대화를 하려면,

그냥 막무가내로 될 건 아니라서.


철인 29호와 있었던 시트콤 같은 일들을 쓰려니까 도무지 생각이 안 나.

너무 웃긴 일이 많았는데. 이 놈의 기억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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