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분쟁과 로힝야(Rohingya)족

민주주의는 항상 모두의 민주주의가 아니다.

by stephanette

미얀마 서부 라카인 주.
이곳은 오랫동안 서로 다른 기억과 공포가 켜켜이 쌓인 경계지대였다.
로힝야라 불리는 이슬람계 소수민족은 수 세대에 걸쳐 이 지역에 뿌리내렸지만, 국가의 서사 속에서 그들은 끝내 “외부인”으로 남았다.


결정적 전환점은 1982년 시민권법이었다.
이 법은 로힝야를 공식 민족 목록에서 제외했고, 그 순간 그들은 국가 보호 없는 ‘법적 유령’이 되었다.
무국적 상태는 곧 교육의 박탈, 이동 제한, 직업 차별, 의료 소외, 출산 아동 수의 제한 등으로 이어졌다.
언제든 임의 체포되거나, 결혼도 허가받아야 하는 삶.
인간으로서의 권리보다 “관리되는 존재”로 취급받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억압된 존재는 조용히 사라지지 않는다.
2012년 지역 충돌이 폭발했고, 2016년 이후 무장단체의 공격을 빌미로 미얀마 군부는 “정리 작전”을 시작했다.
촌락은 불탔고, 강간과 학살이 반복되었으며, 수십만 명이 강을 건너 방글라데시 난민캠프에 도착했다.
국제사회는 ‘심각한 우려’를 표했지만, 우려는 총을 막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은 묻는다.
“민주화의 상징이던 아웅산 수치는 왜 그들을 방치했는가?”

답은 간단하면서도 잔혹하다.


민주주의가 모두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투표권이 없는 사람은 보호받지 못한다.
정체성의 경계 밖에 있는 사람은 국가 공동체의 일부로 인정되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것은 참정권을 가진 ‘국민’의 권리, 그리고 그 울타리 안에서의 평등이다.
울타리 밖의 사람에게 민주주의는 때로 독재보다 더 냉혹하다.


아웅산 수치는 도덕적 상징이었지만, 권력의 구조 속에서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군부와 다수 민족의 인식, 불교 민족주의, 국가주의 정서를 거스를 수 없었다.
민주주의의 운영은 이상이 아니라 표(票)의 구조에 의해 움직인다.
로힝야는 표를 가진 집단이 아니었다.


이 비극은 단지 미얀마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 쉽게 잊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킨다.


민주주의는 자동으로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다.
인권은 “누가 인간으로 인정되는가”라는 훨씬 근원적인 질문에서 시작한다.


민주주의는 제도다.
제도는 도덕을 대신하지 않는다.
투표는 인간성의 보증이 아니다.


지금도 미얀마 국경의 모래 위에서,
난민캠프의 천막 아래서,
한 세대가 닫힌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국가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너는 여기 속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민주주의는 이미 자기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문명은 경계의 이름이 아니라,
그 경계를 누구까지 포함할 것인가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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