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 그 뿌리에 있는 '타자화'와 '정체성'

누가 인간인가를 결정하는 힘의 기술

by stephanette


세계화의 표면 아래, 정치는 여전히 경계 긋기의 기술이다. 국경선만이 아니다. 인간의 경계 즉, 누가 공동체에 포함되고, 누가 제외되는가를 정하는 힘이다. 로힝야 사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난민·이주 갈등, 종교·젠더 혐오까지, 서로 다른 사건의 밑바닥엔 타자화(Othering)정체성 정치가 있다. 이 글은 그 작동 원리를 심리·사회·정치철학의 여러 층위에서 해부하고, 민주주의의 한계를 함께 묻는다.


타자화의 첫 단추 - 차이가 위협으로 변할 때

차이는 언제 위협으로 변하는가. 첫 단추는 늘 같다. 차이(difference)가 낙인(stigma)으로 번역되고, 낙인이 비인간화(dehumanization)로 굳는다. 비인간화는 곧 정당화(justification)의 문장을 얻고, 끝내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라는 행정의 포장을 두른다. 이 일련의 변환은 갑작스러운 민심의 격랑이 아니다. 타자는 자연발생하지 않는다. 권력이 필요로 할 때 생산되는 범주다. 그 생산라인은 언어·언론·교육·법을 한 몸처럼 움직인다. ‘정상/비정상’의 기준이 설계되고, 경계 밖은 ‘위험’으로 명명된다. “질서 회복”, “안보”, “순화” 같은 문구는 폭력의 윤리적 포장지로 배포된다. 타자화는 차별의 심리학이 아니라 배제의 공학이다.


정체성은 서사, 권력, 기억의 산물이다.

정체성은 본질이 아니다. 서사와 권력, 그리고 기억이 짠 직물이다. 정체성은 “나/우리”를 말하려는 순간, 동시에 “그들”을 호출한다. 경계의 정치는 이 지점에서 노골적이다. 내부를 보호한다는 명분이 두꺼워질수록, 외부에 대한 배제는 거칠어진다. 경계가 좁아질수록 국가는 잔혹성을 동원하기 쉬워진다. 담론의 경제학은 이를 입증해왔다. 오리엔탈리즘은 서구가 동양을 ‘신비롭고 미개한 타자’로 구성해 자기 문명의 우월성을 정당화한 전범(典範)이다. 정체성은 언제나 타자 정의의 함수다. “나는 누구인가”는 대개 “나는 저들처럼 되지 않음”으로 적힌다. 정체성의 그림자는, 결국 배제의 문장으로 쓰인다.


심리적 엔진 - 불안이 굳으면 교조가 된다.

이 공학을 움직이는 엔진은 심리다. 불안이 굳으면 교조가 된다. 로키치가 말했듯, 문제는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믿느냐다. 불안이 커질수록 확실성 강박은 높아지고, 권위주의와 흑백논리가 강화된다. 인지적 종결욕은 불확실성을 못 견디게 만든다. 빨리 결론을 붙잡고(seizing) 곧바로 동결한다(freezing). 새로운 정보가 들어와도 갱신하지 않는다. 모호성 불내성은 애매함을 위협으로 번역하고, 차이를 도덕 문제로 치환한다. 확증편향과 동기화된 추론이 마지막으로 회로를 잠근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이렇게 타자화 담론은 자기강화 루프에 진입한다. 불안으로 인해 닫힌 사고는 교조화되고 이는 폭력의 정당화를 불러일으킨다. 정치가 이 회로를 자극하는 순간, 사회는 단시간에 경직된다.


권력의 설계도1 - 푸코: 규율, 생체 권력의 시대

근대 권력은 단순히 금지하고 처벌하는 주권 권력에서 몸을 길들이고 규율, 생체 권력으로 진화했다. 권력의 설계도는 이미 공개되어 있다. 푸코에 따르면 ‘정상/비정상’의 구분은 중립이 아니다. 통치 기술이다. 그 작동 방식은 규율권력 - 학교, 군대, 병원, 감옥 등의 미시 장치가 시간표, 검사, 기록으로 신체를 표준화한다. 생체권력: 통계·의학·치안·복지의 언어로 포장된 권력은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게 둘지”를 인구 단위에서 결정한다. 출산률, 사망률, 전염병, 노동생산성이 정책 타겟이 된다. 정상 곡선 밖은 비용, 위험으로 표기되어 행정적 개입의 대상이 된다. 그 순간 타자화는 감정이 아니라 행정이 된다. 낙인은 정서로 시작되지만, 곧 코드와 양식, 절차로 박제된다. 위험군, 불법체류자, 비순응자 같은 범주는 서류상의 존재가 되며, 감시나 배제 같은 개입은 안전과 효율의 언어로 합리화 된다. 폭력은 행정 양식과 절차 속에서 실행된다. 타자화는 혐오가 아니라 거버넌스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그러니 감정적 훈계가 아니라 지표, 평가, 분류체계를 갈아야 한다.


권력의 설계도2 - 슈미트 & 아감벤: 예외 상태와 벌거벗은 생명

슈미트와 아감벤은 그 행정의 비밀을 더 벗긴다. 주권자는 예외를 선언하는 자다. 친구/적의 구분 자체가 정치의 원리다. 적으로 지정되는 순간, 권리는 축소된다. 위기, 전쟁, 테러는 예외의 스위치를 올리는 가장 쉬운 트리거이다. 아감펜은 슈미트의 이 명제를 확장했다. 예외 상태가 선포되면 법은 정지되고, 인간은 벌거벗은 생명으로 떨어진다. 형식상 유효한 하지만 실질적으로 정지된 법 그 틈에서 탄생하는 존재가 벌거벗은 생명(bare life)이다. 살아 있으나 법적·정치적 죽음의 상태. 난민캠프, 점령지, 구금시설—현대판 법외지대가 그렇게 생성된다. 이는 임시, 한시로 시작되지만 실무와 관성 속에서 상시화된다. 슈미트는 국가의 적을 지정하는 권력(명명권)을 아감벤은 그 명명이 법의 정지를 통해 인간을 관리 대상으로 바꾸는 과정을 드러낸다. 국가는 보호자가 아니라, 인간을 분류하는 기계가 될 수 있다. 예외를 일으키는 명목은 다양하지만 결과는 같다. 권리의 스위치가 내려간 공간의 확장. 민주정치에서 가장 먼저 감시해야 할 것은 예외를 선언하는 언어이다.


권력의 설계도3 - 아렌트: 권리들의 권리 - 시민권 밖의 인간은 침묵한다.

인권은 시민권을 통해서만 현실화된다. 무국적자는 가장 무력한 존재다. 민주주의의 모순은 여기서 벌어진다. 아렌트가 말한 권리들의 권리(right to have rights)는 정치공동체에 속할 권리다. 민주주의는 보편 인권의 보증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 체제다. “누가 시민인가”를 누가 정하는가—비극은 그 질문에서 시작된다. 비극의 메커니즘을 살펴보자. 무국적화는 배타적 국적법, 인구등록, 국경단속으로 법적 사람에서 행정적 유령으로 추락시킨다. 형식적 인권은 존재하나 청구권과 대표성이 없으니 실효가 없다. 이로 인해 보호의 공백이 발생한다. 민주주의는 보편적 제도가 아니라 시민의 제도이다. 누가 시민인가를 정하는 순간, 배제의 가능성은 상수로 남는다.

선거는 제도를 만든다.
인간을 만드는 건 ‘인정’이다.

이는 너도 우리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아렌트는 인권 담론의 낭만을 걷어내고, 정치적 소속의 냉혹함을 직시하게 한다.


권력의 설계도4 - 테일러 : 인정 정치와 파농의 탈식민 시각 - 존재가 보이지 않으면 권리도 없다.

샤를 테일러는 인정(Recognition)의 정치를 말한다. 인간은 존중만이 아니라 ‘인정’, 즉 존재의 가시성을 요구한다. 문화, 정체성이 공적 공간에서 정당하게 재현될 때 비로소 자존이 성립한다. 타자화는 곧 존재의 삭제다.

파농은 식민이 타자의 내면까지 점령한다고 했다. 이는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규정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피부, 언어, 억양, 역사 그 모두가 열등의 거울이 된다. 해방의 조건은 제도 개혁만으로 부족하다. 자기 인식의 회복과 타자의 시선을 찢는 주체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탈식민은 영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재기입이다. 그러므로 제도 개혁이 공허해지지 않으려면, 자기 인식의 회복이 선행돼야 한다.


국가 형성과 폭력 - 틸리: 국가는 성공한 보호조직

틸리는 더 건조하다. 국가는 전쟁의 부산물이다. 국가는 전쟁이 만들고, 폭력을 독점한 성공한 보호조직이다. 전쟁이 자원 추출, 관료제, 군사조직을 낳고 그 축적이 폭력의 독점으로 귀결된다.

틸리는 이렇게 말한다.
"국가는 성공한 범죄조직 - 단, 합법을 장악했다는 점이 다르다."

타자화의 기능은 외부의 적을 명명해 국민 동원을 정당화하며 내부 결속을 다지는 것에 있다. 보호와 복종의 계약에 따른 거래 그리고, 감시, 등록, 검열 등 전시 행정이 평시 관성으로 굳어버리는 행정의 일상화 등으로 기능한다. 국가가 평시에 '위기 프레임'을 상시 가동하면, 예외 상태의 일상화가 진행된다. 국가는 ‘적’을 규정하고, 보호와 복종의 거래를 제도화한다. 타자화는 국가 정체성 유지를 위한 상시적 장치다. 그러므로 이때 타자화는 통치의 기본 프로토콜이 된다. 국가의 기원과 기능을 냉정히 볼수록, 타자화는 정치적 이익의 합리적 도구임이 보인다. 그러므로 해독제도 정념이 아닌 제도 설계여야 한다.


민주주의의 한계: 제도는 도덕을 대신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민주주의에 대입하면, 한계가 또렷해진다. 제도는 도덕을 대신하지 않는다. 다수의 폭정은 언제든 가능하다. 위기·테러·범죄의 담론은 예외 상태를 상시화한다. 포퓰리즘과 정체성 동원은 선거의 인센티브를 경계 확장이 아니라 경계 강화로 당긴다. 법치는 시민을 보호하지만, 비시민 앞에서는 종종 멈춘다.


민주주의는 시민을 보호한다.
진짜 시험은, 비시민·소수자·낯선 타자를 어떻게 다루는가다.


분쟁의 전개 알고리즘과 조기 경보의 지표들

국제 분쟁의 현장은 늘 같은 순서를 밟는다. 첫째, 법적 배제—시민권·참정권·이동권이 잘린다. 둘째, 담론의 전환—차이는 ‘위협’으로 명명된다. 셋째, 국가기관의 편향—치안과 행정이 차별적으로 적용된다. 넷째, 폭력의 정당화—“안보/질서/정화”의 레토릭이 등장한다. 다섯째, 난민과 캠프화—물리적 추방에 법적 투명인간화가 겹친다. 여섯째, 국제사회의 ‘우려’—구조 변화 없는 관망이 길어진다. 일곱째, 기억의 소실—뉴스 밖으로 밀려난 긴 전쟁. 이 알고리즘을 끊으려면 조기 경보 지표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공문서·교과서에서 특정 집단을 ‘이질적/잠재적 위험’으로 표기하는 순간, 신문·방송이 ‘오염·정화·귀환 불가’ 같은 은유를 빈번히 쓰는 순간, 예외 상태와 비상조치가 습관처럼 갱신되는 순간, 임의적 국경통제와 집단 검문이 일상화되는 순간, 정착지·수용시설·캠프가 장기화되고 비가시화되는 순간, 사법부와 감시기구의 독립성이 약화되고 옥상옥형 권력이 등장하는 순간—경보는 이미 울리고 있다.


방어선: 경계를 넓히는 방법 - 정책, 제도, 문화의 3가지 축

방어선은 세 축으로 구축해야 한다. 정책·법제, 제도 설계, 문화·교육.

정책·법제에서: 시민권·거주권을 다층화하라. 장기거주·출생 기반의 준시민권, 지방참정권을 도입하라. 예외 상태에는 헌법적 보루를 심어라. 비상조치는 자동 일몰시키고, 사후 사법심사를 의무화하라. 차별금지법은 구체적 구제수단과 입증책임 전환을 명시하라. 난민·무국적자 보호체계를 손질하라. 무기한 구금을 금지하고, 대리변호·통역·의료를 보장하라.

제도 설계에서: 독립 인권기구와 ‘예외 감시자(policer of exception)’를 상설화하라. 기억정책은 경합적이어야 한다. 학살과 분쟁의 다중 서사를 기념하되, 국론 단일화의 프레임에 묶지 말라. 정책 도입 시 ‘최강 반례 테스트’를 의무화해 반증 가능성의 장치를 규범으로 만들라.

문화·교육에서: 모호성 감내 훈련이 필요하다. 다의적 텍스트와 논쟁적 토론으로 불확실성 내성을 키워라. 타자의 서사를 읽히고, 소수자 자전과 역사문학을 교과의 상수로 삼아라. 미디어 리터러시는 낙인·공포 은유를 탐지하는 체크리스트부터 보급하라.


개인의 윤리 - 유연성은 지능이 아니라 자기 신뢰이다.

개인에게 남는 윤리는 간명하다. 유연성은 지능이 아니라 자기 신뢰다.

결론을 유예하라—“지금은 모른다”를 말하는 습관.

반례 일지를 적어라—내 주장에 불리한 사례 세 가지를 기록하는 습관.

관계의 경계를 지켜라—공감하되 경계를 유지하는 기술.

흔들릴 수 있는 사람만이,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가진다.
교조는 강함이 아니라 불안의 갑옷이다.


문명은 국경의 선이 아니라 인간의 경계에서 시작된다.

결론은 이렇게 적어두자. 정치는 경제와 복지를 다루지만, 더 근원적으로 인간의 범위를 관리한다. 민주주의는 자동으로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다. 시민의 권리 체제다. “누가 시민인가”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항상 배제의 유혹에 노출된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성숙은 다수결로 판정되지 않는다. 비시민·소수자·낯선 타자를 다루는 방식에서 판정된다.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누구까지 ‘우리’로 부를 것인가.
이 질문이 넓어질 때, 민주주의는 제도를 넘어 문명이 된다.
그때 비로소 권력은 인간을 분류하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을 확장하는 기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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