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조화, 덕의 정치가 던지는 질문

타자화와 관련된 동양 정치철학의 레이어

by stephanette

서양 정치 철학이 국가 대 개인, 권리 대 권력을 해부해 왔다면, 동양 정치 철학에서는 공동체, 도덕, 내면 질서의 관점에서 타자화 문제를 탐구해 왔다.


1. 공자 - 인과 예는 타자의 자리를 허락하는 기술

공자의 핵심은 인간을 관계적 존재로 본 것이다.

인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감각으로 받아들인다.

예는 경계를 긋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조율하는 기술이다.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
조화는 하되, 같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동일성의 강요는 타자화의 시작이며, 차이를 품는 질서는 유연성의 시작이다.

서구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격과 권리에 관심을 가졌다면, 공자는 서로를 인정하고 길러내는 관계 질서에 더 초점을 두었다. 타자화는 제도의 기술이지만, 먼저 관계 감각의 붕괴로 시작된다.


2. 순자 - 인간의 불안과 질서의 문법

순자는 인간이 본성상 이기적이라 본 실재주의자이다.

따라서 규범과 제도는 인간의 불안과 경쟁을 관리하는 장치라고 본다.


예는 욕망을 질서로 만든다.


욕망과 불안이 통제되지 않으면, 교조성과 폭력으로 흐른다.

제도는 욕망을 억압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조율의 장치이다.

순자는 푸코보다 2000년 먼저 행동규범을 권력과 질관(秩管) 장치였음을 말하고 있다.


3. 맹자 - 타인의 고통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정치의 출발

맹자 정치철학의 코어는 측은지심이다.


남이 고통받는 것을 보면, 불안이 생긴다. 이것이 인간이다.


타자의 고통을 느낄 능력이 없는 권력은 폭정으로 흐른다.

아감벤의 벌거벗은 생명 개념을

맹자는 이미 왕도와 패도로 구분했다.

왕도를 고통 감각의 정치라고 한다면, 패도는 공포와 통제의 정치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시험도 결국은 이런 의미이다.

국가가 고통을 감각하는가? 아니면, 범주를 감각하는가?


4. 노자 - 국가가 작아질수록 인간은 커진다.

최고의 통치는 존재하지 않는 듯한 통치다.

타자화는 통제의 장치이다.

노자의 대안은 비대칭적 힘을 줄이고, 자율성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의 중앙집권이 위험을 의미한다면, 분권화, 자율성, 로컬리즘은 타자화의 완충 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 노자의 사상은 안티-슈미트적 정치관이라 할 수 있다. 주권이 예외를 선언하는 순간, 이미 패도이다.


권력은 몸과 제도를 통해 타자를 만든다.

동양 정치사상에서는 이렇게 덧붙인다.

마음의 경계가 무너지면, 제도는 이미 늦는다.


민주주의는 숫자 게임이 아니다.

타자를 포함시키는 기술의 진화이다.


화이부동-조화는 같음이 아니라 여공(與共)의 상태이다.


권력은 작아질 때 빛난다.


타인의 눈물에 떨리지 않는 권력은, 이미 짐승이다.



우리는 묻는다.
우리는 어디까지 우리라고 부를 것인가?

그 질문을 넓히는 순간,

정치는 더 이상 분류의 기술이 아니라

존재를 확장하는 기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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