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에 머무를 수 있는 힘
*사진: Unsplash
아빠는 늘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라고.
나는 그런 말이 어떤 뜻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흘려 들었었다.
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서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매우 생생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 덕분에 나는 나의 삶의 매 순간을 매우 감사하게 되었다.
인생을 살아온 연륜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순간에는
단 한 사람의 말이
내 현존을 붙들어주는 경우가 있다.
그 말은 화려하지 않고,
감정에 물들어 있지도 않다.
그저 늘 접하는 그런 소소한 진리
그래서 더더욱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오히려 건조하고 절제된 문장 속에
묘하게 따뜻한 체온이 숨어 있다.
최근 나는
경계 위에 오래 서 있었다.
이성과 감정
의식과 무의식
질주와 멈춤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그 문지방
한쪽은 무너짐의 낭떠러지였고,
다른 한쪽은 아직 열리지 않은 문턱이었다.
어디로도 쉽게 발을 내딛을 수 없는
자칫 떨어질
그 가느다란 선 위에서
나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날,
나의 멘토 중 한 분이 보내온 아주 짧은 한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좋은 판단은 좋은 컨디션에서 나옵니다."
나는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단순한 조언이었지만
그 뒤편에서 묵묵히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은
나를 연약한 존재로도 보지 않았고,
완벽한 존재로도 만들지 않았다.
그저 지금의 무게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누군가의 글자였다.
나는 그 문장에서
감정이 아니라 책임을 보았다.
나 대신 결정을 내려주는 사람의 책임
내가 흔들릴 때 나를 바로 세워주는 이의 책임
사건과 인간 사이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어떤 묵직한 다짐.
나는 그런 책임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무거운 짐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말이 더 깊이 와닿았다.
그리고 그 말은
이상하게도 나를 조용히 안심시켰다.
내가 수많은 이들의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도와주거나
그들의 힘든 시간을 함께 견뎌주었듯이
나도 나의 수많은 멘토들의 염원 덕에
경계를 지나가고 있다.
그 모든 것들에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마녀의 작업실 한가운데에서
어지럽게 흩어진 감정의 조각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선명하게 반짝이는 재료들을 가려낸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사람이 무너지는 순간은
절망이 컵 가득 넘칠 때가 아니라,
누구도 나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보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라는 것을.
내가 애정하는 나의 사람들은
그리고 나의 혈맹들은
나의 가장 어두운 시간,
가장 지친 목소리,
가장 복잡한 내면을 보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내가 잃어버리고 있다고 생각한 명료함을
그들은 오히려 나에게서 발견해 내고
나와 같은 통찰을 삶에서 경험한다.
나는 그 시선에
조용히 감사했다.
감정이 아니라,
존중에 가까운 감사다.
나는 그들의 상처를 덜어주지는 못한다.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내가 스스로 돌아설 수 있는 방향을
흔들리지 않는 문장으로 제시해 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문장 하나가
얼마나 큰 안정감을 만들어내는지
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조금의 평온을 되찾은 마음으로
다시 경계 위에 선다.
하지만 이번에는
홀로 서 있는 느낌이 아니다.
내 뒤에서
한 사람의 문장이 조용히 받쳐주고 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다시 앞으로 걸어갈 수 있다.
절제된 언어로,
과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러나 진심에서 비롯된 한 문장으로.
나는 오늘도
이 경계 위에서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