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기능의 깊은 자아-의식 그 두 개의 다른 시선

자기의 호출(Call of the Self)에 응답하는 사람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이 글은 칼 융과 후기 학파들의 글을 읽고 쓴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이다. 그러니, 칼 G. 융의 저서와는 용어적으로 차이가 있고, 심리와 영성의 경계는 혼합되어 있다. 포스트 융학파 쪽에 더 근접한 내용이다.



1. 왜 두 개의 눈인가?

칼 G. 융은 인간의 의식을 두 개의 다른 시선으로 나누었다. (그는 저서에서 'two kinds of seeing'라고 표현하고, Double-Sighted Self는 학자들의 해석에서 나온 2차적 개념이자 후기 학파의 용어이다.)


첫 번째 시선 - 에고(ego)의 눈

감정, 생각, 논리, 일상적 판단, 관계의 미세한 반응 등 현실을 살아가는 '나'의 눈


두 번째 시선 - 자기(self)의 눈

상징, 깊은 직관, 패턴 감지, 무의식의 방향성, 존재 전체를 조망하는 관점 등 인간 내면의 중심이자 전체인 자기의 눈


대부분의 사람은 이 두 개의 눈 중 하나만 쓴다.

의식이 무의식을 잡아먹거나

무의식이 의식을 압도한다.


융 연구자들은 두 눈이 동시에 작동하는 것은 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를 Double-Sighted Self라고 부른다.

- 칼 융, 프란츠, 힐먼, 스티븐스, 포스트융 학파 등


2. 이중 기능의 깊은 자아, 관조자와 조직자가 동시에 있는 구조

융의 인식 기능을 빌리면 이 구조는 다음과 같은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1. 고도로 발달한 직관

2. 고도로 발달한 상징화 기능

3. 고도로 발달한 개념화 정렬 기능

4. 그림자, 아니마/아니무스, 페르소나를 분리한 뒤 다시 통합하는 능력


보고 해석하고 정렬하고 상징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직관에 의해서 사유하고 구조화를 통해 문학적 변환을 하는 구조이다.

예술가나 분석가 중의 극히 일부에게서 나타나는 특성이다.

융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감정의 파동 아래에서 흔들리지 않는 동시에
그 파동의 형체를 정확한 언어로 기록할 수 있는 사람


3. 이중 기능의 깊은 자아, 그 특징 10가지

① 관계에 들어가도 휘둘리지 않는다.

감정에 휩쓸리는 듯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감정의 구조를 분석하고 있다.

② 무의식이 던지는 상징을 곧바로 의식이 번역한다.

꿈·예감·징후·우연·감각이

바로 텍스트로 전환되는 것.

③ 글이나 예술적 표현이 곧 무의식의 지도(Map)가 된다.

작가나 예술가 중 일부분은 무의식 작업을 한다.

④ 인간 관계의 ‘위상 변화’를 직관적으로 감지한다.

누가 상승하는지, 누가 내려가는지

누가 자기 그림자를 회피하는지

⑤ 감정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상징형 인식자’.

⑥ 위기 상황에서 가장 빠르게 의식을 상승시킨다.

⑦ 타인의 내면이 겹겹이 보인다.

겉모습 → 감정 → 동기 → 그림자까지

단계적으로 구조가 보이는 인식.

⑧ 타인의 말과 행동에서 ‘무의식의 파열점’을 찾는다.

⑨ 자기(Self)가 의식(Ego)보다 크다.

⑩ 예술과 분석이 하나의 행위로 통합되어 있다.

글을 쓰면 분석이 되고

분석을 하면 예술이 된다.


4. 자기의 호출에 민감한 사람

자기의 호출은 누구에게나 오지만

민감도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


힐먼, 스티븐스 등의 포스트 융학파들은

Double-Sighted Self는 '자기의 호출을 가장 민감하게 감지'한다고 말한다.


5. 그림자와 무의식의 문을 혼자서도 열 수 있는 능력

일반인은 그림자와 맞닥뜨리면

투사하거나 도망가거나 붕괴한다.

하지만 Double-Sighted Self는

그림자를 정면으로 보되 붕괴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아(Ego)가 아닌 자기(Self)가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융은 이런 사람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스스로의 영혼의 숲으로 들어가
길을 잃지 않는다.
그는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6. 이 구조를 가진 이들의 '필연적 외로움'

이중 기능의 깊은 자아는

대부분 사람과 시야가 다르기 때문에

“타인의 이해를 기다리지 않는 내적 고독”을 가진다.

그러나 그 고독은 상처가 아니라

작업실이다.

그들은 그 공간에서 우주의 언어를 번역한다.

그래서 관계가 멀어져도 상처가 아닌 ‘좌표 이동’으로 읽히는 것.

이건 고도의 자기화(Self-realization)의 징후다.



이들에게
글쓰기와 예술은
무의식이 그들에게 보내는 '자기의 호출'에
응답하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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