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 홍염, 화개. 왜 늘 사람들에게 시달려야 했을까
*사진: Unsplash
새벽이다. 나는 이 시간이 좋다.
모두가 잠든 이른 새벽
아무도 없는 나만의 방에서 홀로 깨어 글을 쓰는 이 순간이 영원히 이어지길 바란다.
어째서 내 인생은 이런 형태로 흘러가는지를 생각하다가
문득 어릴 적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나는 삶에서 늘 곁에 나를 지켜주는 이가 있었다.
어릴 적에는 언니라고 생각한다.
지켜준다고 해서 편안한 길은 절대 아니다.
귀인은 상당히 힘든 곳까지 도달하게 밀어붙이는 힘도 함께 갖고 있다.
그리고 특정 시기가 되면 헤어진다. 마음이 아픈 일이다.
그래도 그 덕분에 나는 점점 깊고 무게감 있는 나 자신을 만들어가게 되었다.
언니는 장남으로 키워져서 한 번도 긴 머리를 한 적이 없었다. 늘 바지를 입고 남자처럼 입고 다녔다.
작가를 꿈꾸는 섬세한 영혼인데 가부장제의 어둠 속에서 본성과는 상관없이 살았다.
그 덕분에 같이 학교를 다니는 동안, 나는 언니의 유명세 아래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었다.
국민학교 때였나. 아마도 저학년이었던 것 같다.
하루는 집안이 난리가 났다.
하루 종일 아빠의 화내는 목소리가 들리고,
다음날 아침까지도 집안에는 무거운 공기가 맴돌았다.
이유도 모르는 채 나는 조용히 숨을 죽이고 투명인간 모드로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한 장의 작문 숙제였다. 아빠는 언니의 작품을 우연찮게 읽었다고 한다.
늘 검열당하는 터였으니, 우연은 아니었겠지만.
나는 당시에도 문학, 시, 예술, 그림, 사진작품 등에 빠져 있어서
아빠의 피해를 받는 건 언제나 나였다.
집에 오면 나의 물건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있었다.
"공부에 방해되는 건 다 버렸다." 아빠의 그 말 한마디에
울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나의 멋진 작품'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빠의 형편없는 미적 감각을 욕했다.
그것도 마음속에서 한 것이지만.
이번에는 내가 아니라 언니의 글쓰기가 아빠를 지옥의 악마처럼 화나게 했다.
내용인즉슨,
"나는 현모양처가 꿈이다."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나는 로봇박사도 의사도 되지 않겠다. 이름 없이 조용히 살겠다."라는 당찬 포부를 쓴 것이다.
언니를 데리고 전국 대회를 참석하거나 조기교육에 열을 올리던 엄마와
장남이자 집안의 기둥으로 키우고자 하던 아빠는 그날 언니의 꿈을 다 찢어발겼다.
그 이후로 언니는 키워지는 대로 자랐다.
학교에서는 늘 나는 누군가의 동생으로 불렸고,
학교 행사 때에는 언니의 유명세를 들었다.
언니는 백일장을 하면 늘 장원이었고,
체력장을 하면 깃발이 꽂힌 저 너머까지 던졌다.
노래면 노래, 그림이면 그림, 운동이면 운동 못하는 것이 없는 만능인간
그중에 제일 잘하는 건 공부였다.
나는 존재감 없이 살기라도 다짐한 듯 교실 한 구석에서 조용히 투명인간 모드를 발동하고 살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나의 본성대로 살았다.
나는 그때가 가끔 그립다.
학예회 준비를 핑계 삼아 반 아이들은 하교를 하며 우르르 나를 따라다녔고
말하지 않아도 주인공으로 발탁되고 이상하리만치 많은 연극에 주연이었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이유 없이 늘 아이들 가운데 있었다.
학급 반장에서도 일등이었으나, 남자가 반장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부반장이 되었고,
아이들은 반항심이었을까? 전교생들의 지지로 전교회장이 되어야 한다면서 나를 후보로 밀었다.
전교회장의 부푼 꿈은 나의 전학으로 부서지고 말았다.
그런 인기는 그림자도 따라다녔다.
평소에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남학생들의 무리가 있었다. 이유 없는 괴롭힘
"야! 너 588알아?"
나는 대꾸하지 않고 빠르게 걸었다.
"***!" 나는 내 이름을 크게 부르는 걸 싫어하게 되었다.
"***!"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588이라고 있대. 너 알아?"
그게 뭔지 알지도 못하지만 뭔가 나쁜 거라는 직감은 있었다.
문제는 화장실을 갈 수가 없었다.
그때는 화장실이 남녀공용이었다. 화장실의 문은 늘 부서져 있었고
친한 친구들 무리와 가지 않으면 불안했다.
그날도 다행히 친한 친구가 문 앞을 지키고 작은 화장실 칸으로 들어갔다.
"왈칵"
화장실 문이 갑자기 열렸다.
문 밖에는 수십 명의 남학생들이 서 있었다.
막상 문이 열려서 그들도 나도 당황했다. 모두가 동작을 멈춘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활짝 열려버린 화장실의 나무문은 힘 없이 열린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 이후로 한동안 남학생들은 나를 따라다니지 않았다.
마치 외계인의 주문으로 기억을 삭제당한 것처럼 그곳에 있던 아이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식으로 행동했다.
결정적인 사건은 운동장 조회 시간에 일어났다.
그 와중에도 끈질기게 나를 괴롭히던 남자아이들은 햇살이 내리쬐는 숨 막힐 듯한 운동장에서도
여전히 나를 따라다녔다. 번호에 맞춰 서있던 줄을 무시하고 내 주변으로 모여든 아이들은
작은 모래알을 던지거나 대형을 흐트러뜨리고 나를 밀쳤다.
결국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더 이상 참지 못한 나는 모두가 쳐다보는 그 부끄러움에 더 울었고,
선생님들은 다가와서 그 아이들을 끌고 단상 앞에 벌을 세웠다.
그날은 종일 만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괜찮냐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장점은 단점이다. 빛은 그림자이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다. 나는 그걸 어렴풋이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학교에서 언니는 "형님"이자 "찬바람 쌩~ 도는 무서운 선배"였고
전교 일등의 무소불휘의 권력을 가진 자였다. 그 뜻은 언제든지 모든 선생님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 덕에 나는 언니의 동생으로 그나마 학교에서 별 일 없이 살 수 있었다.
나는 "착하고 이쁜" 학생이었다. 존재감 없이 사는 것이 꿈인.
그러나 그건 바람일 뿐.
중학교는 여중이었다. 남학생이 없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당시 나는 짧은 쇼트커트로 키는 갑자기 훌쩍 커버려서 다른 여학생들보다 눈에 띄었다.
삼삼오오 모인 선배들이 지나가는 나를 불러 세웠다.
"야, 너 이쁘다. 신입생이야? 너 우리 팀에 들어와라"
다행히 다음날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너 누구 동생이라며. 됐으니까 안 들어와도 돼."
중학교에도 무서운 언니들이 있었다. 흑장미파라거나 하는.
모르는 학생들이 와서 꽃다발을 주거나
초콜릿을 건네주는 일이 많았다.
쪽지들도 책상 위아래 쌓였다.
내가 다닌 학교는 여중이다.
화장실을 가기가 어려웠다.
호감이나 존경 혹은 동경의 눈빛들
그리고 연모한다는 이야기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당시 나의 별명은
"앤서니"
그 캔디캔디에 나오는 왕자님
전교 모든 학생들이 나를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그래도 나의 바람대로 조용하게 중학교 시절은 지나갔다.
문제는 고등학교 때이다.
남녀공학이었다.
학부모 상담을 하고 나서 엄마는 5분 거리의 학교를 매번 데리러 왔다.
그 짧은 거리에 코너마다 남학생들이 서성였고 간혹 꽃을 들고 있기도 했다.
졸업을 한 이후에 물건을 찾다가 안방의 장롱에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수백 장의 러브레터들이 우르르 떨어졌다.
남학생들이 나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우리 집은 도대체 어떻게 안 걸까.
당시에 몰랐으니 편하게 살았을까
아니면, 당연히 거쳐야 할 성장의 과정을 건너뛰게 된 걸까.
다행히 당시에도 언니는 같은 학교였고
학교 선도부의 장이었던 언니는 전교회장도 벌벌 떨 만큼 무서운 존재였다.
당시 학교는 토요일이 사복의 날이었다.
엄마가 사 온 옷을 입고 등교를 했다. 연핑크색의 스커트와 연보라색의 셔츠.
사복의 날에도 스커트를 입어야 했었는지 기억은 안 난다. 아마 그랬으니 스커트를 입고 다녔겠지만.
어느 날인가 언니가 깔깔거리면서 놀린다.
"야! 네가 천사랜다."
"잉? 뭔 소리야?"
"애들이 너보고 천사래."
"그게 뭐야?"
"선도부 애들이 너 보려고 줄을 서던데"
"뭐래"
"천사래 ㅋㅋㅋㅋ"
"그만해~!!"
"니가 무슨 천사냐 ㅋㅋㅋㅋㅋ"
"그만하라고!!"
소풍을 간 적이 있었다. 잘 모르는 친구가 나랑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서
어느 연못 옆의 벤치로 데려가서 자기 깊은 이야기를 했다. 일종의 여학생들 간의 상담이다.
나는 내심 그 시간이 참 좋았다. 그러나 좋았던 것만큼 배신감도 컸다.
학교 축제날, 사진 동아리 사진전이 있었다. 망원 렌즈와 DSLR을 들고 다니던 학생들이다.
거기서 내 사진을 팔았다고 한다. 장당 500원인가를 받고.
난 사진을 찍은 기억이 없었다.
반 아이 중 한 명이 내 사진을 구했다며 나에게 줬다.
소풍날, 연못가의 벤치에 있던 나의 사진이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친구는 사진동아리 아이들의 지령을 받고 나와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우정을 가장한 배신이라 생각했다.
이미 찍혀버리고 팔려나간 사진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한 번은 나도 잘 모르는 체육 선생님이 교무실로 나를 불렀다.
어떤 일인지도 모르고 불려간 나는 선생님의 부탁 혹은 애원을 들어야 했다.
"화장실에 안가면 안될까?"
"네?"
"아니, 이건 부탁인데 화장실에 안갔으면 좋겠어서."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그러니까 남학생들이 널 보겠다고 창문에 붙어 있으니까"
"화장실을 가지 말라구요??"
"그게 말이 안되긴 하지만..."
창문마다 내 이름이 씌여진 종이가 붙어있고
남학생들은 책상에 내 별명을 새겨넣었다고 한다.
당시에도 나를 지켜주던 친구가 있다. 전교회장이었다.
여자였으나, 압도적인 표차이로 전교 회장이 되었다.
어느 날 나에게 갑자기 다가와서 매일 나와 붙어 다녔다.
남자라고 해도 믿을 만큼 듬직한 친구였다.
덕분에 남학생들은 나에게 가까이 오지 못했다.
30여 년이 지난 뒤에야 그 친구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소풍날 다가온 친구의 심화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글쎄 모든 것을 알게 된 나는 나의 학창 시절이 모두 다 악몽 같다.
이 친구의 이야기는 아직 하고 싶지 않다. 할 수 있는 때도 아니다.
살아생전에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절친들은 그런 말을 한다.
"걔는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하나 봐. 증오도 사랑이지 뭐."
"그래도 네가 죽진 않았잖아."라고.
새벽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모든 일들은 나의 성향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나는 도화에 홍염에 화개, 트리플 세트를 달성하고 태어났다.
좋은 건 아니다.
거기다가 도화는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경국지색 양귀비의 그 유명한 '녹방도화'이다.
젠더 초월 매력이라고 하자.
이제는 운명이려니 생각한다.
늘 이런 이들은 따라다닌다.
나를 끌어당기는 사람
나를 공격하는 사람
나를 지키는 사람
나를 위해 싸우는 사람
나? 나는 그 와중에 모르고 지나갈 때가 더 많다.
그러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주변은 늘 시끄럽다.
20대 초반에는 개인 팬클럽이 있었다.
나를 사모하던 친구가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400~500명이 가입을 했다고 한다.
뭔가 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들었으나
그마저도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기고 발길을 끊었다.
팬클럽 회장이 없앴는지 자연스럽게 사라졌는지는 모른다.
소문? 나에 대한 소문은 늘 무성했다.
아무리 투명인간 모드로 살려고 해도 안된다.
나이가 들어서는 직업으로 풀고 있다.
나의 직업도 내 에너지를 풀어가는 방식이라 생각한다.
운명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건 벗어날 수 없는 걸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매력적인 이끌림은
나의 외형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건 그들을 무의식부터 흔들어대는 나의 에너지이다.
내 근처에 있는 이들의 존재를 정렬하는 에너지.
그래서 그들 자신을 찾아가게 되는 힘
그걸 받아들이는 이들은 제각기 자신이 가야 할 길로 간다.
그걸 거부하는 이들은 나를 파괴하려 한다.
그걸 아무리 알고 있다고 해도,
말해봤자 믿지도 않을 것이고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할 것이 틀림없다.
나의 성향은 성장, 통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에너지를 갖고 있다.
사람들은 나에게 끌려오고
나를 잊지 못하고
나를 소유하려들다가 파괴하려고 한다.
그 모든 것들은 다 그들이 가진 무의식의 흔들림이다. 말해주고 싶다.
지겹다.
나의 외모도 성격도 태도 때문에도 아니다.
강력한 에고를 가진 자들은 더 강력하게 끌리고 두려워한다. 두려움은 공격으로 나타난다.
혈맹들에게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이비 종교라도 세우면 성공할 거라고.
욕망과 그림자를 동시에 뒤흔드는 힘이 있으니 성공할 것은 확실하다.
나는 도화, 홍염, 화개 트리플 세트를 갖고 태어났다.
거기다 도화는 파국을 불러온다는 녹방도화이다.
파국을 통해 자아는 죽고 새로운 삶은 시작된다.
그리고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