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사람을 괴롭히는 이유

친절이 분노를 불러오는 역설, 그럼에도 진정성 있게 살기 위해서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칼 융의 무의식과 그림자에 대해서


그림자는 우리가 가진 어둠이다.
현실에서 덜 체화될수록 그림자는 더 짙어진다.


당신이 친절하고 괜찮게 대해도

상대가 가장 바라보기 꺼리는 바로 그것을 거울처럼 비춘다.

당신이 밝을 수록

상대의 어둠은 더 드러난다.


공들여 지켜온 자신의 모습이

빛에 환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그림자를 당신에게 투사한다.

가장 더럽고 악한 그 모습을

자신의 것이 아닌 바로 당신의 것이라고 말한다.


당신이 상대에게 연민을 가질수록

당신은 희생양이 된다.


진짜 친절은 수동적이지도 과시적이지도 않다.

맑은 눈으로 나와 타인의 모습 그대로를 보는 것이다.

그 빛과 그림자를 다 바라보고 분명한 경계에 뿌리를 두는 것이다.

그러니 친절은 내적 권위에서 나온다.


친절할수록 방어는 더 커진다.
타인의 그림자는 정직한 반영을 견디지 못한다.


과민한 이에게 인내를

탐욕스러운 이에게 너그러움을

변덕스러운 이에게 꾸준함을 건네는 것은

상대가 폐기해버린 자신의 모습 즉, 그림자를 자극하는 것이다.


그림자가 짙을수록 방어는 더 거칠어진다.

그리고 투사를 한다.

자신이 성취하지 못하고 구석으로 밀어넣은 것을 당신에게 칠한다.


기준이 있다는 이유로 당신은 거만해지고

차분함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당신은 가식적이 된다.

경계가 있다는 이유로 당신은 조종적이 된다.


당신의 도움은 통제로

당신의 경청은 깔봄으로

당신의 명료함은 냉혹함으로 재포장된다.

이런 투사를 통해 상대는 그림자를 비추는 거울을 깨려고 한다.


그들이 그토록 숨겨오고 외면하고 회피했던

바로 그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의 존재와 자기 존재의 불일치를 깨뜨려야하기 때문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들의 경멸은 당신 인격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미해결 과제의 증상이다.


이것을 안다고 해서 상처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당신 이야기가 아닌 서사를 내면화하는 일은 없어진다.


그리고 내가 타인에게 투사를 하는 바로 그 순간

나의 그림자를 대면할 수 있게 된다.


페르소나는 사회적 유능함으로 만들어낸 가면이다.
페르소나의 뒤에서 오랫동안 살게되면 그 내면은 비어버린다.


당신의 행동이 페르소나가 아니라 진정성에서 나올 때,

아직 가면과 융합된 이들에게는 불안정해지는 효과를 일으킨다.

온건한 용기를 갖고 허세를 거부하는 당신으로 인해 상대의 허세는 드러난다.


가면은 스스로의 공허를 인정하는 순간 산산조각난다.


당신의 친절은 약함으로

당신의 인내는 어리석음으로

당신의 이해는 천진함으로 왜곡된다.

이것은 내파된 팽창(inflation turned inward)이다.

겉으로 우월감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 팽창이 안으로 폭발해버린 상태.


외부로 우월감을 펼치지 못하니까

그 팽창된 자아가 자신 안에서 무너지고

그 붕괴의 충격을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방식을 분출한다.

이것은 열등감의 폭발 형태로 나타난다.


다시말해 자기를 크게 만들고 싶었으나 실패한 나머지

그 분노와 수치를 타인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이다.


자기 그림자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 결핍을 당신의 친절이 드러내고

그 불편함을 견딜 수 없어서

공격성으로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당신의 친절과 다정함은 상대의 분노와 공격을 불러온다.


어떤 이는 자기 안의

과민함, 불안, 열등감, 공격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당신의 안정감은 그 사람의 그림자를 비춰버린다.

그 결과 그 사람들은 겉으로 "내가 더 낫다"고 우월감으로 치고 나오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 팽창된 자아는 안에서 폭발한다. 그리고 그 여파는 이렇게 흘러나온다.


"너 왜 이렇게 거만해?"

"너 가식이야."

"네가 통제하려 하는거야."

"네가 문제야."

이건 당신의 인격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 내부에서 폭발한 감정을 당신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타인에게서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데 이를 수 있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미묘하다.

반응하지 않으면서 진정성을 지키는 것

그들의 인정을 얻기 위해 중심을 거래하지 않는 것


페르소나는 이분법에 기생한다.

진정성은 그 이분법을 녹여버릴 수 있다.

우리의 과제는 우리 자신으로 남는 것이다.


집단이 가진 그림자도 마찬가지이다.

'희생양 만들기'의 수법도 같은 맥락이다.

사회적 틀을 벗어나 진정성있게 사는 이에게 집단의 수치를 투사하여 처단한다.


올바른 친절을 알아보는 특징은 경계의 명료함이다.

힘과 돌봄을 통합한다.

그래서

아무도 모른다 해도,

오해받는다해도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그 친절을 계속 할 것인가?

그것이 진짜 친절이다. 진정성 있는 친절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단단함은 투사를 덜 반영한다.

진정한 친절은 약함이 아니라 강함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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