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알고 난 뒤에야 믿을 수 있는 것들
*사진: Unsplash
1. 상처를 안다는 것은 세계를 다시 보는 일이다.
나를 공격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
신뢰를 잃어버린 관계의 잔해,
선물에 담겼던 마음이 찢겨지고 버려졌다는 걸 뒤늦게 알게된 배반감,
우정이나 친분처럼 교묘하게 다가왔던 악의,
나를 해치던 오랜 상징들,
과거의 배신.
그 모든 것들을 통해
세상에 대해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는
우리를 경계나 고립으로 밀어 넣기도 하고,
반대로 세계를 더 깊게 바라보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첫번째 길로 가지 않았다.
사람은 잃었지만
사람 자체를 잃고 싶진 않았다.
불신은 나를 지켜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존재의 중심을 잠식한다.
그래서 나는 상처를 품은 채
다시 사람을 바라보기로 했다.
2. 믿음은 순진함이 아니라 구조다.
믿음은 '순진함'이나 '착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인격에서 나오는 일관성에 대한 신뢰,
그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다.
그리고 이는 상대의 빛과 어둠을
둘 다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의 그림자,
관계의 균열,
경계와 책임,
상징이 오염된 순간들.
그걸 모두 통과한 뒤에 남는 믿음은
누군가에게 기대는 감정이 아니라
내가 나를 스스로 세우는 하나의 방식이다.
믿는다는 것은 타인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겠다는
아주 개인적인 선언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연다는 건 무엇인가
나는 상처로부터 도망치치 않았고,
그 상처가 나를 망가뜨리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사람에게 받은 악의 때문에
선물이라는 상징을 버렸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뜻밖의 순간,
뜻밖의 사람에게서 온 작은 선의가
그 상징을 다시 열어주었다.
상징이 회복되면
사람에 대한 믿음도 회복된다.
거창한 의식이 아니라
작고 따뜻한 움직임 하나로
믿음은 그렇게 부활한다.
4. 그래서 나는 다시 사람을 믿기로 했다.
누구나 어둠을 지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끝내 빛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런 빛은
말보다 조용한 행동으로 드러난다.
상처를 통과하고 나서야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을 믿기로 했다.
어둠을 통과한 마음으로, 다시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앞으로 다가올 관계들에 대한 예감은 나를 설레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