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자유의지가 교차하는 지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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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결코 두 사람이 함께 만드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개의 자유의지'가 교차하는 지점일 뿐이다.
타인의 감정은 타인의 영역이다
그 사람이 느끼는 호감도, 망설임도, 충동도, 경계도
그 사람 내부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당신은 그 시스템을 "관찰"할 수는 있어도 "조작"할 수는 없다.
어떤 성격의 어떤 유형의 사람이든
그의 판단은 그의 인생의 전체 맥락에서 움직이는 것이고
그것은 당신이 움직여서 변하는 게 아니다.
만남은 의도보다 '불가피성'으로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흔히 "내가 만나고 싶다 vs 만나기 싫다"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양상이다.
어떤 사람은 피해도 다시 마주치게 되고
어떤 사람은 애써 이어도 끊어지고
어떤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찾아온다.
어째서 나를 좋아하냐고 물어도
어째서 나를 좋아하지 않느냐 물어도
이건 자유의지와 무의식의 궤도가 맞물릴 때만 만남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의 궤도에 서고, 그는 그의 궤도에 서 있을 뿐인데
두 궤도가 교차할 때 "만남"이 된다.
그저 교차하고 영영 멀어질지 혹은 영원히 하나의 궤도를 달리게 될지
그건 알 수 없다.
대화도 거리감도 '상대의 내부 조건'이 결정한다.
당신은 당신의 페이스로 말을 걸고, 조절하고, 다가가기 혹은 물러나기를 선택하지만,
상대가 그 말을 어떻게 읽느냐는,
그의 상처 구조
그의 성향
그의 과거 관계 패턴
그의 현재 불안 수준
그의 삶의 맥락
이 모든 조건의 산물이다.
즉, 그의 반응은 당신과 무관하게 그에게 속한다.
그러므로 타인은 결코 '나의 일부'가 아니다.
당신의 마음이 움직이고
당신의 감정이 진심이라 해도
나중에 알고보면
안정감에 대한 욕구였거나
불안감의 종식을 위한 조건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상대의 삶에서 만남이 어떤 의미가 되는지는
상대의 자유의지가 선택한다.
그리고 그 의미도 당시에는 모르는 채 행동할 수 있다.
그는 제안할 수 있고
당신은 응답을 선택할 수 있다.
이어지는 만남 속에서 시간이 흘러가면서
제안과 응답 각각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드러난다.
비극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관계란 결국,
타인의 세상과 내 세상이 만나는
두 개의 자유의지의 결과물이다.
무의식에 반쯤 눈을 가린 자유의지 말이다.
그러니까 두려워할 필요도, 과한 기대를 가질 필요도 없다.
사랑하는 이라면 당연히 ~해야한다거나
그 정도의 관계라면 ~일거라거나
그런 기대는 버리자.
대화나 소통으로 합의나 통제가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도 버리자.
불가능한 영역에 힘을 쓰게 된다면
관계는 파국으로 간다.
진짜 성숙한 만남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상대를 이상화하거나 폄하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상대의 자유의지를 완전히 놓아두는 태도에서 관계는 살아난다.
그래서 결론은
그가 당신에게 느끼는 모든 감정, 모든 충동, 모든 거리 조절은
그의 자유의지이다.
그것은
당신의 책임도, 당신의 성취도, 당신의 실패도 아니다.
당신은 당신의 자리를 지키고
당신의 삶에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다.
모든 기대를 버리고.
이 진실을 이해한 사람만이
사랑에서도
우정에세도
영적인 연결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