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를 생각하며
*사진: Unsplash
1. 기다림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 회피의 장치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하는 일은 단순히 기다리는 게 아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동안 삶은 계속 흘러가고, 선택의 기회도 계속 지나간다. 하지만 작품은 이들이 “기다리는 중”이라는 상태를 방패처럼 사용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의 핵심 문장은
지금은 결정할 때가 아니다.
우리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머물 수 있다.
이때 기다림은 수동이 아니라 능동적 회피 전략이 된다. 기다린다는 말로 현재의 선택을 면제받고, 책임을 미래로 밀어낸다.
2. “가자” — “그래, 가자” — 그리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리듬이 있다.
둘은 반복해서 떠나자고 말하지만 떠나지 않는다.
이 대사의 반복..
여기에는 인간 심리의 핵심 구조가 들어 있다.
말로는 결단을 만들고
몸으로는 결단을 부정한다
즉, 언어가 결정을 대체한다. 말로 결정을 “연기”하며 실제 행동을 회피한다. 그러다 보면 결정은 점점 “내일로” 미뤄지고,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이게 바로 결정 유예의 영구화다.
3. 고도는 ‘사람’이 아니라 결정의 외주화 대상이다
많은 해설이 고도를 신(神), 구원, 의미, 시스템 등으로 읽는데, “결정 유예” 관점에서는 고도는 이렇게 기능한다.
내가 선택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주는 외부의 권위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명분
고도가 오면 무엇이든 해결될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그들이 바라는 건 해결이 아니라 면제다.
고도는 “내가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로 사용된다.
4. 소년의 메시지: “오늘은 안 오고 내일 온다” — 유예의 정당화
소년은 반복해서 비슷한 메시지를 전한다.
고도는 오늘은 오지 않고 내일 온다고.
이 메시지는 객관적 사실 전달이 아니라 지연의 구조를 유지하는 장치다.
“내일”이라는 약속은 즉시 그들의 현재를 마비시키고, 선택을 연장한다.
미래가 약속될수록 현재는 무력해진다.
희망이 주어질수록 행동은 중지된다.
희망은 빛이 아니라 정지 신호가 된다.
5. 포조와 럭키: 결정 유예가 낳는 ‘권력’과 ‘종속’의 희극
포조-럭키는 결정 유예가 장기화되었을 때 인간이 빠지는 관계 패턴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포조: 명령하고 정리하는 ‘가짜 주체’
럭키: 생각하고 말하지만 삶을 선택하지 못하는 ‘가짜 객체’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도 사실 이 둘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스스로 주체라고 느끼지만, 핵심 결정을 계속 외주화한다.
그래서 관계는 주체/객체가 뒤섞인 채 정체된 공동체가 된다.
6. 2막의 반복: 시간이 흘러도 ‘형태’는 바뀌지 않는다
2막은 1막의 반복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게 핵심이다.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건이 일어나도 선택이 없으면 삶의 형태는 바뀌지 않는다.
나무에 잎이 돋아도
포조가 망가져도
시간이 흘러도
그들의 구조는 유지된다.
변화는 사건이 아니라 선택에서 온다.
선택이 없으면 변화도 없다.
결정 유예가 영구화되면, 시간은 흐르지만 서사는 진행되지 않는다.
7. 이 작품이 보여주는 인간의 가장 현실적인 비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비극은 “기다렸는데 고도가 안 온다”가 아니다.
진짜 비극은 이것이다.
고도가 오지 않는 동안, 그들은 이미 ‘움직이지 않는 삶’을 선택했다.
그 선택을 선택으로 자각하지 못한 채.
그래서 이 작품은 절망적이면서도 정확하다.
인간은 결정을 미루는 순간, 그 미룸 자체로 이미 결정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늦게 아는 사람은 보통 당사자다.
결정 유예의 영구화란 무엇인가
결정 유예의 영구화는 “아직 결정 안 했다”는 심리 상태가 아니라, 삶의 형태다.
말은 계속 미래를 향하지만, 몸은 현재에 고정된다. 희망은 행동 대신 소비되고, 외부의 구원(고도)은 주체의 책임을 면제해준다.
결국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렇게 속삭이는 작품이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선택은 사라진다.
선택이 사라질수록, 기다림은 영원이 된다.
이것은 '사랑'의 형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혹은 '사랑의 시차'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