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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Omens

아마존 프라임 제공 영국 드라마

by stephanette

원작: 영국 작가 닐 게이먼, 테리 프래쳇의 소설

배우: 마이클 쉰, 데이비드 테넌트 등 영국 배우 중심

유머 코드: 전형적인 영국식 블랙 유머와 풍자분위기: 절제된 위트, 말의 뉘앙스, 대사 중심의 매력

제작, 배급: 아마존 프라임


굿 오멘스가 특별한 이유는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여서가 아니다.

이 작품의 가장 매력적인 장면은
아마겟돈도, 기적도, 신의 개입도 아닌
천사와 악마가 단둘이 마주 앉아 대화하는 순간들이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는
설득도 없고, 개종도 없고, 승부도 없다.

다만
오래 함께 살아온 존재들만이 가질 수 있는
묘한 이해와 체념, 그리고 애착이 있다.


왜 ‘대결’이 아니라 ‘대화’인가

보통 이야기에서
천사와 악마는 싸운다.
선과 악은 늘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굿 오멘스의 아지라파엘과 크롤리는
싸우지 않는다.
그들은 너무 오래 함께 있어버렸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지구에 머물며
같은 장면을 보고,
같은 인간들을 관찰하고,
같은 사소한 기쁨들—
음식, 음악, 산책, 책—에 익숙해진 존재들.


그래서 그들은
선과 악의 대리인이기 전에
서로의 세계를 이미 알고 있는 친구가 된다.


선과 악 이후의 자리

이 둘의 관계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들이 중간쯤에 있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선과 악의 중간이 아니라,
선과 악이라는 구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자리에 있다.


선이 항상 옳지도 않고

악이 항상 파괴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이미 너무 많이 보아버린 존재들.


그래서 그들의 대화는
윤리적 판단이 아니라
삶에 대한 관조에 가깝다.

“그래야만 한다”는 명령보다
“그래도 이건 지키고 싶다”는 감정이 앞선다.


왜 지금 이 이야기가 필요한가

굿 오멘스는
“세상은 구원받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끝까지 대화를 멈추지 않는 존재들이 있다면
세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천사와 악마가 둘이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이토록 매력적인 이유는

그 모습이
지금 우리가 가장 잃어버린 관계의 형태와
닮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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